최용덕 장군. 사진=공군 제공
최용덕 장군. 사진=공군 제공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공군 제2대 참모총장 최용덕(1898-1969) 장군은 독립운동가였고 광복군이었으며 전투기조종사였다.

최 장군은 1946년 미군정 1공화국 시기와 임시정부수립 이후 1948년 초대 공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공군 창설을 주도하고 초대 국방부차관과 김정렬 장군에 이어 제2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공군의 산 증인이었다.

1898년 서울 성북동에서 출생한 최용덕 장군은 1910년 국권 상실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했고, 1910년에는 베이징으로 유학해 근대학문을 공부했다. 이후 중국 육군군관학교에 입학해 체계적인 군사훈련까지 받았다.

1919년 기미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북경지역에서 대한독립청년단 단원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한다. 약산 김원봉이 단장이었던 무장독립투쟁단체 의열단에도 가입해 1923년 김상옥 의사의 조선총독부 폭파 의거를 위한 폭탄 확보와 조선 반입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외에도 1923년에는 한교동지회를 조직해 기관지를 발간하는 등 일제에 대항한 무장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가운데 독립운동의 외연 확장에도 적극 힘썼다.

이 시기에 최용덕은 대한독립청년단 군무부장이었던 한인 최초의 전투기 비행사로 추정되는 서왈보 장군의 영향을 받아 중국항공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24년부터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하며 일제와 맞섰다.

1943년에는 조종사 인력 양성과 비행기 구입 운동 추진, 공군설계위원회 설립과 운영을 주도하는 등 미래의 공군 창설을 위한 초석을 놓았다.

5년 뒤 1948년, 최 장군은 항공부대 창설을 주도하는 등 공군 창설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과 동시에 초대 국방부 차관이 된 그는 `국군조직법`에 공군의 독립 가능성을 담은 유보조항을 반영했고, 1949년 10월 1일 마침내 대한민국 공군이 창군된다.

국방부 차관으로서 공군 창설에 크게 기여한 최 장군은 6·25전쟁 중이던 1952년 제2대 공군참모총장으로 취임해 조국을 수호했고, 2년 뒤 물러난 뒤에도 공군참모총장 고문으로서 군 발전에 기여하다가 1956년 11월 1일에 전역했다. 정부는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평생 조국의 광복과 공군 창설을 위해 살아온 창석 최용덕 장군은 1969년 8월 15일 광복절에 숙환인 고혈압으로 운명했다. 그는 `내가 죽으면 한국 군복을 입혀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공군 관계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군인의 본분을 다하며 무장독립투쟁을 지원하고, 공군력의 중요성을 통찰하여 공군 창설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그는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라고 최 장군을 기렸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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