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국 신협연수원 교수
김연국 신협연수원 교수
은행계좌에 들어온 월급은 오래 머물 줄 모른다. 잠시 정차했다 지나는 간이역처럼 갖가지 구실을 남기고 금세 빠져나간다. 납작한 통장엔 갈증 같은 정적만 남는다. 돈은 원래 어떤 물건을 사거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겨난 것이니, 누구의 소유로 독점되는 것은 온당치 않으나 남은 잔고를 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다. 어떤 명목으로 들어오든 누구의 통장 속에 머물든 돈의 최종 목적지는 정해진 것이 아니지 않은가. 아쉽지만 내 돈이라고 마냥 움켜쥐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돈의 가치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아무래도 현금이다. 요즘은 카드나 송금이체 방식이 더 많이 소용되지만 언제 쓰일지 모르는 비상금으로는 현금이 적합하고 대개 지갑 속에는 얼마간의 현금을 지니고 다닌다. 설날 아침 빳빳한 현금으로 쥐어지는 세뱃돈과 흰 봉투에 싸여 공수되는 불우이웃성금은 물론이고 하루의 일당으로 받아 드는 현금은 돈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케 한다.

돈은 무엇보다 쓰임새가 중요하다. 저축이나 투자로 재산을 증식하고 사업이나 근로의 대가로 지불되는 돈은 가치저장 수단으로써 돈 본연의 속성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돈은 항상 본래의 속성대로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불행하게 쓰이는 돈은 도박장에 끌려나온 돈이고 가장 잊혀지지 않는 돈은 주식해서 잃은 돈이며 가장 안타까운 돈은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하는 돈이다. 차안에 두고 내린 지갑 속의 돈은 가장 속상하고 세탁기에 넣고 돌린 돈은 가장 슬픈 돈이며 가장 기쁨을 주는 돈은 보너스로 받은 돈일 것이다.

이처럼 돈은 각양각색의 얼굴을 하지만 그 본질은 사실 공정하고 평등하다. 돈은 그 자체로 누구를 편애하거나 무엇을 욕망하지 않는다. 더욱이 사기도 치지 않는다. 돈은 언제나 생겨난 제 기능에 충실하고 필요한 곳에 잠시 머물 뿐이다. 그러므로 돈을 추한 것으로 배척하거나 무익한 것으로 치부할 필요도 없다. 돈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원망할 일도 아니다. 돈을 부패의 상징으로 호도하는 건 돈으로선 더욱 억울한 일이다.

돈이 욕망의 대상이 된지 오래고 이제 돈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돈은 부담스럽고 버겁다. 돈이 세상에 만연하고 만인이 선망한다 해도 돈은 스스로 만용을 부리거나 선심을 베푸는 일은 없다. 돈도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돈이 필요하고 부족한 곳에 기꺼이 머물기를 바라겠으나 돈 자체로 만능이 되어 주목받는 세상은 원치 않는다.

돈은 불행을 막아주는 수호신이 아니며 행복의 파수꾼은 더욱 아니다. 돈이 승패의 가늠자가 되거나 환심의 시녀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돈이 많다 해서 세력을 만들지 않듯이 부족하다 하여 주눅 드는 일도 없을 것이다. 돈은 그저 돈으로서 족하다. 어느 소설가의 말대로 돈은 써버리면 거품 따위가 일어나지 않듯이 어느 누구의 집착에서도 벗어나길 바랄뿐이다. 머지않아 돈은 우리의 집착을 뿌리치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돈을 보듬고 바라보던 그 때를 추억할지도 모른다. 돈은 죄가 없다.

김연국 신협연수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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