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의 레벨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에는 레벨이 있다. 캐릭터는 낮은 레벨에서 약하지만 레벨이 올라갈수록 강해진다. 얼마 전 인기리에 끝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주인공이 필사적으로 레벨을 올리려고 노력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레벨을 순식간에 올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레벨을 올리려면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탐구 레벨은 어떨까? 교육과정에서는 탐구를 강조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탐구에 관심이 없다. 입시에서 탐구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입시에 도움이 되는 것들에 매몰된다. 대학에 들어가면 상황은 나아질까? 그렇지 않다. 역시 좋은 점수를 위해 시험 족보만을 찾는다. 정답을 찾기 위해 여전히 책 속 지식에 파묻혀 산다.

학생들이 탐구를 처음 시작하는 시기는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다. 그때부터 탐구 레벨을 키워보려고 노력하지만 경쟁력을 갖추기엔 너무 늦다. 어려서부터 꾸준히 탐구 레벨을 키워온 선진국의 학생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은 탐구의 레벨을 키울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이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구조적으로 탐구를 입시에 반영해야 한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선진국들은 이미 반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형편에 맞는 루브릭 평가(학습자 수행역량을 영역별 기준에 맞춰 세분화해 평가하는 방식) 연구들도 많이 이뤄졌다. 심지어 어려운 환경에서도 앞선 교사들은 이미 탐구를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영재학교 입시에서도 탐구 능력을 평가에 적용한다. 탐구를 입시에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혹자는 대학의 의지를 탓하지만 시스템 문제가 더 심각하다. 작은 문제 하나가 발견되면 크게 부풀리는 언론과 이에 맞장구 치는 정치가, 행정가들이 문제다. 덕분에 대학은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한다. 하지만 계속 탐구를 무시한다면 미래는 없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지식의 암기와 재생은 시대를 역행할 뿐이다. 이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탐구 속에 우리 미래가 있다.

그럼 탐구가 입시에 반영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탐구를 즐기는 문화가 동반돼야 한다. 탐구를 좋아하는 마음 없이 입시를 위해 억지로 탐구한다면 요령만 생길 뿐이다. 탐구를 즐기는 습관을 통해 탐구 레벨을 자연스럽게 올릴 때 진정한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즐기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음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서양은 벽난로를 사용해 집 안에 열을 공급한다. 옆은 따뜻하지만 바닥은 차갑다. 집안에서 신발을 신을 수밖에 없다. 바닥이 더러우니 의자에 앉고 바닥과 분리된 침대에서 잠을 잔다. 불이 꺼진 후에는 춥기 때문에 침대가 있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자연스럽게 개인주의가 발달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추위를 이기기 위해 온돌을 사용했다. 바닥이 따뜻하니 신을 벗고 앉는다. 바닥을 청결하게 유지할 수밖에 없다. 다른 민족이 입기 꺼리는 흰색 옷도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청결이 몸에 배였기 때문이다. 온돌은 불이 꺼져도 따듯함이 유지된다. 서로 흩어지기 보다는 가족 모두가 함께 잠을 청한다. 서로 같이 있는 시간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예절을 강조한다.

동방예의지국은 누군가가 노력해서 얻어진 명성이 아니다. 온돌을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의의 레벨이 향상됐다. 이와 같이 학생들이 탐구를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탐구의 레벨이 향상된다. 학생들의 탐구 레벨이 향상된 상태에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면 국가경쟁력은 물론 노벨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탐구를 즐기는 마음은 입시에 탐구를 반영하는 토양에서 자라난다. 그래서 필자는 올해도 탐구를 내신 성적의 중심에 놓아 토양을 마련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탐구를 즐길 수 있는지 연구하는 일만 남았다. 올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탐구를 즐길 수 있는지 단서를 찾아 공개하기를 희망해 본다.

김종헌 대전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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