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가옥은 현재 189건이다. 여기에 시도에서 문화재로 지정한 전통가옥의 숫자를 더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전통가옥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지붕을 기와로 얹은 기와집, 볏짚을 쓴 초가집, 억새로 지붕을 덮은 샛집, 나무판이나 널찍한 돌널로 지붕을 덮은 너와집 등등. 그런데, 물길 위에 지은 집은 전국을 통틀어 단 세 곳에 불과하다. 하나는 구례 송광사의 우화각이고, 다른 하나는 곡성 태안사의 능파각이다. 그런데 이들은 사람사는 집이 아닌 `통행로`의 성격을 갖고 있다. 사람이 사는 `집`의 형태를 가진 곳은 대전에 있다. 바로 대전의 동쪽에 위치한 꽃산의 남쪽 자락에 놓인 남간정사(南澗精舍)이다.

남간정사는 우암사적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집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유명한 성리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제자를 가르치던 곳이다. 송시열은 유교 예법의 대가인 김장생으로부터 성리학과 예학을 배웠고, 그의 뛰어난 학문적 업적은 후대의 인정을 받아 1744년 문묘에 배향되었으며, 그를 기리는 서원은 무려 70개가 건립되었다. 말 한 마디, 글 한 구절이 큰 사회적 영향을 미쳤던, 당대의 유학자, 송시열이 머물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어떻게 생겼을까?

일단 정면에서 보이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네 칸 건물이다. 사실 거의 모든 대한민국의 집들은 대부분 3칸, 5칸 등 홀수 칸이다. 짝수 칸을 가진 가운데 두 칸은 마루, 그 좌우 칸은 온돌방이다. 온돌방이 있으니, 뒤편에 아궁이가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왼쪽과 오른쪽 칸이 모양이 다르다. 왼쪽, 즉 서쪽 칸은 안으로 들어서면 남북으로 두 칸을 터서, 긴 온돌방을 통으로 두었다. 반면에, 오른편, 즉 동쪽 칸은 뒤쪽은 온돌방이지만, 앞쪽은 누마루다. 게다가 마루 밑에는 집 뒤에 위치한 꽃산에서 흘러나온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다.

전통건축에서 물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물이 흐르는 길은 원래 동쪽에서 들어와 서쪽으로 흐르는 것이 좋다고 여겨진다. 경북 경주의 옥산서원은 아예 서원 서편에서 흐르는 계곡 물의 일부를 끌어들여 서원 안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만들었고, 서울 창덕궁 안에 위치한 낙선재 역시 작은 물줄기를 집 안으로 살짝 걸쳐 흐르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 지었는지 여러 가지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여하튼 물이 집 아래를 흐르도록 지어진 전통 가옥은 우리나라에서 이 집이 유일하다.

이와 유사한 건축으로 서양에는 꽤 유명한 사례가 있다. 유명한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해서 1935년에 지어진 `낙수장(Falling Water)은, 계곡 위에 지어진 개인 주택이다. 그런데 막상 건축주가 집에 들어가 살아보니 유난히 물 양이 많은 날에는 물 떨어지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자는 경우가 발생하였고, 얼마 후 별장으로만 사용하다가 지금은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남간정사는 어땠을까? 지금의 모습을 보면 마루 아래를 통과하여 흐르는 물줄기는 작은 개울에 불과하다. 어쩌다 비가 많이 와도 높지 않은 뒷산과 집 뒤에 놓인 사당으로 인하여, 물 양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바라보다 보니, 어쩌면 이 작은 물줄기는 여름철 시원한 마루를 유지시켜주는 자연 에어컨 역할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전시에서는 남간정사를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엄격한 유교 예법과 치열한 논쟁 속에 수십 년을 보낸 유학자는 이제 없지만, 그가 떠난 남간정사는 지금도 그 자리에서 옛 주인을 기리고 있다. 다시 봄이다. 따뜻한 봄날 오후, 꽃산을 거닐면서 남간정사에서 옛 어른의 가르침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조상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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