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르셀 뒤샹`전(2018.12.22.-2019.4.7)이 뜨거운 관심과 열기로 진행되고 있다. 필라델피아미술관의 뒤샹 컬렉션 중 레디메이드(기성품), 회화, 사진, 드로잉, 영상 아카이브 자료(150여점)가 망라된 뒤샹의 예술세계는 서구미술이 모더니즘으로 진입하는 사례와 사건들을 압축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뒤샹의 작품과 발언 등을 통해 현대미술과 미술가라고 하는 제도와 시장, 개념, 형식, 철학의 모든 문제들이 사후 50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현실화된 질문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전시는 관객들에게 관찰하고 몰입할 다양한 주제를 던진다. 바로 미술이 관습적 형식을 탈피하는 것에 대한 뒤샹의 태도가 새로운 미술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뒤샹은 어떤 형태의 `취향`을 `갖게 되는 것`이 위험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인정받은 어떤 것을 반복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거부는 다음과 같은 뒤샹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예술가라면 진정한 대중이 나타날 때까지 50년이고 100년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대중만이 제 관심사입니다."

뒤샹은 1912년 파리에서 피카소를 만났다. 20대의 학습기였던 뒤샹은 인상주의와 큐비스트, 야수파 등의 화풍을 습득하며 이후 미국에서 명성을 얻게 된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그린다. 뒤샹의 관심은 움직이는 누드였고 큐비즘이 행한 시간과 공간의 분절, 그리고 형태를 알 수 없는 인물의 해체와 기계적인 모습으로 엄청난 논란을 만들었다. 형태를 분해해 움직이는 형상을 골격 대신 선으로 축소하는 것, 뒤샹의 목표는 움직임의 정적인 재현이었다.

미국으로 오기 전 이미 명성을 획득한 뒤샹은 1917년 현대미술의 전환이 될 중요한 퍼포먼스를 벌였다. 독립예술가협회 전시에서 뒤샹은 맨하탄의 쇼룸에서 구입한 소변기를 알 머트(R.Mutt)라는 가상인물의 사인을 넣어 `샘`이라는 이름으로 출품했다. 그 어떤 정의에 의해서도 그것은 예술작품이 될 수 없다는 협회의 거부에 격렬한 찬반양론이 일어났다. 뒤샹은 이 무명작가를 옹호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변기가 부도덕하지 않듯 머트씨의 작품 `샘`도 부도덕하지 않다. 배관 수리 상점의 진열장에서 우리가 매일 보는 제품일 뿐이다. 머트씨가 그것을 직접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일상의 평범한 사물이 실용적인 특성을 버리고 새로운 목적과 시각에 의해 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생각으로 창조된 것이다." 오늘날 개념미술의 확고부동한 단어들이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다.

뒤샹은 자전거 바퀴, 병걸이, 가스, 공기, 유리창, 잡동사니, 체스, 계산서, 출판한 책, 서류 등 일상 전 영역을 미술로 선택했다. 시장을 의식하고 화상의 주문에 따라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삶을 버리고 완벽한 프리랜서인 예술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뒤샹의 이러한 작업을 위해 집과 작업실을 내주고 후원한 아랜스버그 부부가 있었다. 뒤샹은 자신의 작품이 흩어지지 않도록 이 후원자와 함께 필라델피아미술관에 전용관을 만들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이 바로 그것이다.

뒤샹은 회화의 물성으로부터 멀어지고 싶다고 말했다. 이 점에서 다다는 중요한 참고가 됐다. 다다는 진부함에서 결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 물성에 대항하는 형이상학적 태도였다. 뒤샹이 아뽈리네르, 로트레아몽, 말라르메 등을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뒤샹은 예술에 대한 다음과 같은 태도를 지녔다. "저는 회화를 목표 자체가 아닌 표현의 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표현의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이지 삶의 최종 목표가 전혀 아니라고요"

류철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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