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특전요원은 부대창설이후 국가 산업건설과 국가적 재해·재난현장의 최선봉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전요원은 국민의 군대로서 국가경제 발전의 선봉에서 해군특수전부대의 명성을 쌓아왔다. 창설 이후 국가적 재해·재난에서 구조자로 나선 해군특전부대의 활약상을 살펴본다.

1957년 5월부터 시작된 전국해안의 부두건설과 통항에 장애가 되는 암초제거 및 수중불발탄을 처리도 해군특전요원들의 몫이었다. 또 1964년 울산만 해저송유관 설치시 해저의 수중정밀정찰에 나서 울산 정유공장건설에 일조했다.

1967년에는 포항제철 기공식관련 발파, 신항건설을 위한 수중탐색, 장애물 제거, 수중암반 폭파 및 항로개척으로 선박 출입항을 보장했고, 해저 파이프라인 설치시 수중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1996년 북한 상어급 잠수함, 1998년 북한 유고급 잠수정에 대한 내부수색 작전을 수행했다.

특전요원은 미 해군 실(SEAL) 작전요원들과 비교될 정도로 `세계 속의 대한민국 특전부대`로서의 명성도 쌓아왔다. 1999년 상록수부대, 2001년 해성부대, 2005년 인도네시아 지진해일 복구, 2014년 필리핀 태풍피해복구 등의 해외파병작전에 함정경계, 대 테러 방호, EOD 요원으로 파병돼 세계평화와 대한민국해군의 위상제고에 크게 기여했다.

2010년 3월 30일 천안함 사고 구출 작전을 수행하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한주호 준위는 UDT 출신이다.

해군특전요원의 활약상이 널리 알려진 건 아덴만 구출작전이다.

2011년 1월 5일, 아덴만에서 항해중이던 대한민국의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다.

이에 청해부대 최영함이 투입돼 1차 작전에서 해군특전요원 3명이 부상을 입는 어려움 속에서도 1월 21일 오전, `아덴만 여명작전`을 수행해 해적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 피랍선원 21명 전원을 무사히 구출했다. 이는 국군이 해외에서 대한민국 국민을 구출한 최초의 사례이며 인질과 해적이 혼재한 상황에서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없이 완벽히 구출한 특수작전이었다. 청해부대와 해군특전요원은 `아덴만 여명작전`에 이어 같은 해 4월 21일 해적들의 습격을 받은 한진 텐진호(선원 20명)에 승선, 안전을 확보했다. 같은 해 4월 30일에는 우리 국민 4명이 승선한 제미니호가 피랍돼 소말리아 내륙으로 억류됐으나 피랍된지 1년 8개월만인 2012년 12월 1일에 구출했다. 강은선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강은선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