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은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의 영향을 받아 대체로 추운 지방이다. 100여년 전 오늘 안중근 의사는 차디찬 감옥에서 대륙의 꽃샘 추위를 온몸으로 견디며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고 있었으리라.

순국하기 전 남긴 그의 유언은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옆에 묻어 두었다가 나라를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였다.

일본의 패망으로 해방이 됐지만 아직 안중근 의사는 돌아오지 못했다. 진정한 독립은 오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인 독일은 동서독으로 분단됐다. 전쟁을 일으킨 댓가였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피해자가 댓가를 치르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일본 대신 한반도가 양분됐다.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분단이라는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사형된 그날 밤 일본 간수가 그의 시신을 감옥 터 뒤에 매장했고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다행히 남북이 협력해 유해를 발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금와서 유해 송환이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단서가 없어 얼마나 많은 예산이 들 지 모르고 성공 여부도 불투명한 사업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기리는 건 인물 자체가 아니라 그가 행한 일을 되새기는 것이다. 또 되새기는 행위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애국자를 떠받드는 이유는 현실적이다. 국가는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나라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합당한 보상이 돌아간다는 믿음이 있어야 효율성이 커진다. 정부가 국민의 믿음을 저버리면 사회 갈등을 조정할 때 막대한 신뢰 비용이 들어간다. 국가 발전에 쓰일 예산이 엉뚱한 데 쓰이는 셈이다.

태극기 달고 애국가 부른다고 없는 애국심이 생겨나지 않는다. 애써 돋아난 싹에 물을 주고 살뜰히 보살펴야 나라사랑의 꽃이 피어난다.

정부는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사라지게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유공자 후손에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청와대에 초청하는 등 애국에 대한 예우를 높이고 있다. 최근 독립유공자 손자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처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할아버지 덕에 어깨 펴고 다닌다"고 SNS에 글을 올렸다. 이 네티즌은 애국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역사 바로잡기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한 일이다.

지방팀 이용민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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