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한 달간의 외국 나들이를 할 기회가 생겼다.

이십여 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중학교 동창친구가 초대를 한 것이다. 중학교 때 친한 짝꿍이었다고는 해도 거의 이십여 년 간 교류가 없었고, 무슨 예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무척 고맙긴 해도 부담감 또한 적지 않은 초대였다. 하지만 한 달이나 집을 떠나있을 핑계라니, 얼마나 꿈꿔오던 기회인가.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유혹이었다. 나는 어렵사리 남편의 양해를 얻어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 경과 함께 댈러스 행 비행기에 올랐다.

댈러스 공항에서의 긴 입국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옥이 목을 길게 빼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옥의 환대는 더 할 수없이 따뜻했고, 우리의 재회는 어떤 제약도 어색함도 없었다. 마치 어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듯 스스럼이 없었고 즐거움이 넘쳤다. 이것이 어릴 적 친구라는 것이로구나. 우리는 수시로 그 기꺼움을 확인하며 마음껏 웃고 수다를 떨었다.

친구들은 `네가 소설을 쓰니까`라는 전제로 자신들의 구구절절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나도 사이사이 그간 살아온 내력들을 보태면서 서로가 모르고 지냈던 시간들은 블록을 끼워 맞추듯 차근차근 채워 나갔다.

하지만 이렇듯 살가운 우리들의 만남에 불쑥불쑥 균열이 이는 순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옥의 한국정치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온갖 채널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정치판의 신변잡설에 얼마쯤 염증을 내고 있던 터였고, 경 또한 정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옥의 관심사에 접점을 찾는 일은 번번이 난항이었다. 게다가 옥이 들어 알고 있다는 뉴스들은 한국에서 얼핏얼핏 들었던 이야기보다 더 허황되고 거칠었다. 예컨대 `대통령이 국민들 몰래 김정은을 만나고 온 사실을 알고 있니?` `평창 올림픽 때 북한 선수단이 국가 기밀 지역을 통과해 온 것을 알고 있니?` 하는 식이었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 대통령이 전적으로 김정은의 지령을 받고 있다거나, 중국 시진핑 주석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고 우기는 데까지 가면 도무지 대책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뿐인가. 이 땅에 대한 옥의 기억은 IMF시절 반 토막으로 오그라든 재산을 그러모아 부랴부랴 떠나갔던 때에 붙잡혀있어서, 그동안 꽤 여러 번 한국을 다녀갔는데도 도무지 이곳의 변화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넌 정말 한국이 안 망한다고 생각하니?` 하고 진지하게 물을 때, 나는 정말이지 헉, 하고 한 대씩 얻어터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보낸 한 달 동안 훨씬 많이 볼 수 있었던, 옥의 따뜻하고 천진스러운 어린 시절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 짧지 않은 기간은 몹시 지루하고 따분한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싶다.

결국 나는 단호하게, 우리의 우정을 위해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며 한국을 비판하는 것과, 한국의 정치 이야기는 그만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은 그녀의 비판에 대응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고, 그런 대책 없는 논쟁으로 우리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구강기라거나 항문기 고착 같은 억압된 심리가 있다더니, 인생 중반기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 뿌리를 내려야했던 그녀에게 그 시기는 정신적 구강기이거나 항문기로 고착되어 있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다면 전후 육십여 년, 이 땅의 격변기를 오롯이 지켜보며 이곳에서 살아낸 우리의 의식은 어디쯤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 듣기 민망할 만큼 허황되고 자극적인 가짜뉴스들의 출처를 생각해보면 옥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그 것들은 결국 대부분이 한국에서 만들어져 퍼져나간 것들일 테니 말이다. 머나먼 타국에 살면서 저도 모르게 고국을 향해 귀 기울여 지는 것이야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우리가 별 생각 없이, 혹은 짧은 잇속을 따져 쉽게 지어내는 말들이 세상을 떠돌다 되돌아와 제 뒤통수를 치는 주먹돌이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이예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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