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단장을 하고 있는 새 집을 둘러보았더니 아무래도 창마다 쏟아져 들어오는 푸짐한 햇살과 구름과 푸른 하늘은 두고 가야 할 것 같다. 대신 옆방에 새 소리 바람 소리 거느린 숲 하나를 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어주어야 하는 삶의 이법이 여지없이 적용되는 것이다.

신학기가 코앞에 다가와 있어서인지 요즘 아파트 단지에 이사 차량이 부쩍 늘었다. 비가 오지 않아야 할 텐데, 오늘도 누군가 이사를 오는 모양이다. 한 식구처럼 훈훈한 봄을 맞기도 하고 때로는 혹독한 겨울을 함께 견뎌왔을 가구며 책이며 각종 소품들, 조금은 민망할 수도 있을 저마다의 이야기가 푸른 상자에 봉인된 채 옮겨지고 있다.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오십 반을 살면서 여러 번 이사를 했다. 이번이 일곱 번째다. 매번 이사를 준비할 때마다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미리 고민하게 된다. 사치품도 없고 단출하지만 그래도 버릴 것이 생긴다. 덩치 큰 피아노는 미리 `무료 나눔`을 통해 꼭 필요한 분에게 드렸다. 삐걱거리는 의자는 스티커를 붙여 쓰레기 수거함으로 보내져야 할 것이다. 신혼 때 쓰던 접시들은 음,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지고 다니던 미니 오븐은 혼자 계신 지인에게 드리기로 했다. 책들은 최대한 시골 도서관에 보내려 한다.

개미나 다른 동물들처럼 가벼워지고 싶기도 하고 뒷일을 생각하면 무얼 사는 게 늘 조심스럽다. 나눌 수 있으면 나누고 고칠 수 있으면 고쳐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멀쩡한 물건들이 분리수거함에 잔뜩 쌓인 걸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우리가 잠깐 세 들어 사는 이 지구 어딘가에 험하게 구겨져 자리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처를 옮길 때마다 새로운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작은 숲을 끼고 반짝이는 햇살과 갈참나무 잎들이 바람에 나달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소소한 행복을 누려보고 싶다. 내가 머물던 이 집에서도 신나는 일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 이사하는 날에는 설탕 한 봉지와 지난 가을에 수확한 참깨도 볶아서 두루마리 휴지와 함께 부엌 한편에 두고 가려 한다. 고소하고 달달하게 사시라고, 힘주지 않아도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시기를 바라며.

이미숙 시인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