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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나의 금주기(禁酒記)

2019-02-26기사 편집 2019-02-26 08: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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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필자의 새해 다짐은 금주(禁酒), 즉 술을 끊는 것이었다. 사실 이 다짐은 지난해부터 이어져왔다. 금주를 새해 다짐으로 여기게 된 것은 건강 문제 때문이었다. 연말의 잦은 과음 속에 몸이 축나는 것을 몸소 느끼며 금주를 생각하게 됐다. 물론 문제는 음주 자체라기 보다 과음이었다. 각종 술자리에서 분위기가 무르익다 보면 '적당히 마시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술자리의 성격에 따라 두주불사(斗酒不辭)하거나 들어오는 술잔을 사양하는 '선택적 음주'도 좋은 옵션이지만, 그런 식의 적응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모임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결심했다. 사실 쉽지는 않았다. 여러 모임에서 술은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학회 학술행사에서도 흔히 뒤풀이 술자리가 이어졌다. 술을 권유 받을 때면 일일이 술을 끊게 된 사정 이야기를 하며 양해를 구해야 했다.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상황 설명을 듣고는 이해해 줬다. 다행히 음주를 억지로 강요받는 일은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을 겪었다면 그 모임을 계속 나가야 할 것인지 까지 고민했을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대신 모임 자리에서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등의 노력을 했다. 때로는 '칠성주'라고 이름 붙인 사이다나 탄산수를 권하며 이야기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이전 같으면 약간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날리던 분위기 띄우기용 멘트들은 술 없이도 차츰 익숙해졌다.

금주를 실천하면서 음주 운전이 원천 봉쇄됨은 물론, 음주 보행 중 자칫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상 위험에서 벗어난 것도 과외의 소득이라 할 수 있었다. 또 예상치 못한 순기능도 있었다. 후배들이 찾아와 인사를 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내게 음료를 건네며 인사를 하면 나는 음료로 채워진 답잔을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주량이 세지 않은 후배들의 경우 특히나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1년 이상 금주하다 보니 '술 없이 무슨 낙(樂)으로 사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물론 필자도 술과 함께 희로애락을 겪었던 과거가 있고, 술에 얽힌 소싯적 무용담도 있다. 간혹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추억 속 그리운 장면들이다. 마음 맞는 지인과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진실로 큰 낙이다. 이와 함께 스트레스의 손쉬운 해소라는 음주의 순기능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특히나 의사라는 직업이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음주의 장점은 간단히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었다. 하지만 이제 금주를 결심한 이상, 음주의 순기능과 작별 하며 대안을 찾아야 했다.

대안으로 찾은 것은 운동과 감상(鑑賞)이었다. 즐겁게 운동하는 방법은 등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맑은 공기를 가슴 깊이 마시며 자연을 즐기는 시간은 필자에게 정말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혼자여도 좋았고, 가족을 비롯한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그 즐거움이 배가됐다. 감상하는 즐거움은 제법 여러 분야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음악, 영화, 그리고 미술작품 감상은 나름의 심미안과 깨달음, 그리고 휴식을 줬다. 생활 속에서 겪는 자잘한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음악을 감상하다 보니 내가 직접 악기를 다뤄 소리를 만들고 싶어졌고, 작은 노력 끝에 간단한 연주도 가능하게 됐다. 기회 닿는 대로 미술작품 감상을 하다가 아예 인근 미술관에 연간 회원 등록을 하기도 했다.

결국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지고 풍요로워졌다. 이런 변화가 금주 자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금주로 인해 얻은 생활의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금주를 실천해 나가기로 했다. '술 마시기'를 내 생활에서 걷어냄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는 여유를 지속적으로 누리고자 함이다. 덜어내야 새 것을 채울 수 있는 여분의 공간이 마련된다.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또 어떤 것을 내 인생에서 덜어내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본다. 멀리 가려면 짐을 가볍게 해야 한다.

김대경 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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