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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내재적 일의성의 문화

2019-02-26 기사
편집 2019-02-26 08:4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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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내가 매달리고 있는 주제는 박상륭의 소설세계를 질 들뢰즈의 내재적 일의성의 시각으로 읽어보려는 것이다. 내재적 일의성이란 질 들뢰즈의 존재론을 대표하는 개념이다. 먼저 일의성을 보자. 들뢰즈의 개념 중 가장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일의성'이다. 일의성을 '단 하나' 혹은 '일자(一者)'로 보는 시각인데, 알랭 바디우나 슬라보이 지젝이 대표선수들이다. 그런 이해는 유목주의자 들뢰즈가 물리치려는 정착적 시각들이다. 들뢰즈의 일의성은 상위 원리에 따른 위계성에 반대한다. 일의성은 평등과 다양성, 차이를 긍정한다.

들뢰즈의 존재론을 잘 설명하고 있는 저작은 68혁명이 일어난 해에 발표된 '차이와 반복'이다. 문학을 하는 내가 들뢰즈를 얼마나 이해하겠는가마는 만약 누군가 나에게 '23권에 달하는 들뢰즈 저작들 중 단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고 질문한다면, (가장 야만적인 질문이겠지만) 나는 고심 끝에 이 책을 추천할 것 같다. 이 책의 말미에 들뢰즈는 심오하고 경이로운 말들을 하고 있다. '개방성은 일의성에 본질적으로 속한다.' '존재를 언명하는 것은 차이 자체이다.' 이 짧은 문장들은 명징한 이성적 성찰 안에 존재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품고 있기에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성과 감성은 대립하지 않고, 들뢰즈의 개념인 '강렬도'를 달리하는 차이 자체로서 일의적이다. 이성과 감성은 서로를 지탱하고 보충한다. 예술을 하는 사람은 이성과 감성을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 그래야 예술이라는 나무에서 잎 한 장을 딸 수 있다.

이제 '내재적'이란 측면을 살펴보자. '내재적'과 '일의성'은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지만, 편의상 그렇게 할 뿐이라는 점에 유념하자. 차이와 일의성은 얼핏 보면 존재론적으로 병립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여기서 다시 '강렬도'라는 개념을 빌자. 물이 빙점을 통과하면 얼음이 되고 기화하면 수증기가 된다. 물과 얼음, 수증기는 일의적이어서 각각 다른 강렬도라는 차이를 지닌 채 서로 같다. 'H2O'라는 존재 안에서 그 존재의 형식들인 물, 얼음, 수증기는 내재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차이를 지닌 존재자들이다.

'내재적'의 반대는 '외재적'이다. 다른 예를 통해 정리해 보자. 우리의 아이들은 성적이라는 외재적 개념을 통해 존재를 부여받아선 안 된다. 성적이라는 '외재적' 기준은 아이들을 서열로 나누고 우열을 가린다. 내재적 일의성의 차원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평등하다. 평등은 '차이' 그 자체를 인정할 때 실현된다. 지역 담론도 마찬가지다. 내재적 일의성. 존재론적으로 이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분야가 문화예술이다. 내재적 일의성에 대한 들뢰즈의 교훈은 더 남았다. 내재적 일의성의 존재론에서는 각각의 존재자들이 '과잉의 상태'에 도달해 있어야 한다. '과잉의 상태'란 무엇인가. 역량을 넘어서려는, '~되기'에의 기투다. 다시 한 번 우리는 문화와 예술의 본질인 '창조성'으로 회귀했다. 차이를 낳으며 끝없이 반복되는.

류달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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