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각종 매스컴은 지역 의회 의원과 국회의원의 선진지 시찰에 대해 여러 비판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아울러 지역 주민도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해 그 시비를 가린다. 어쩌면 선진지 견학은 우리에게 참고사례로 삼고자 가는 것이기에 꼭 선진지만 고집할 필요는 없겠다. 때로는 잘못된 사례나 가난한 나라를 보고서도 배울 점이 더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진지 견학의 임무는 달랐지만, 나도 그간 여러 일로 다양한 형태의 해외 견학이나 방문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세 사례다. 하나는 1988년 12월에 60일의 일정으로 미국의 동부, 중부 및 서부지역의 9개 식물원과 수목원을 돌아본 일이다. 당시 재직하던 영남대 캠퍼스에 대학식물원을 만들 계획이 있었으나, 이에 관련한 정보나 자료가 거의 없었다. 당시에 해당 연구비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전액 자비 부담으로 방문 길에 올랐다. 관련 자료수집과 함께 식물원이나 수목원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떤 계획을 세웠고 이후 관리하면서 어떠한 시행착오를 겪었는가를 듣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였다. 아침 출근 시작부터 일과를 마치고 저녁식사 때까지 쉴새 없이 여러 부서의 직원과 대화를 나누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기억에 남는 점은 각 기관이 나의 일정을 시간 단위로 준비해 거의 그대로 시행한 점이다. 이때 만났던 일부 직원은 오는 5월에 미국의 수목원을 방문할 때에 다시 만난다. 내 보기에는 그들은 융통성이 전혀 없을 정도로 일정표에 따라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자신의 업무에 큰 자부심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맡은 바 안내를 했다. 다른 하나는 1993년 7월에 미국의 두 식물원에서 온 팀과 모스크바에서 합류해 40일의 일정으로 블라디보스톡, 두만강, 나호트카 및 항카호수 등지에서 식물채집을 하던 때다. 경산을 출발하기 전에 상세한 채집 일정표를 받았지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가끔 정상회담의 시간을 지키지 않듯 일정이 꽤 자주 꼭 꿩 구워 먹은 소식과 같았다. 간혹 어떤 날에 일정대로 하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대로 채집할 것은 거의 다 해내서 다행이었다. 지금은 물론 크게 개선됐겠지만, 두 강대국 간에 그 무엇이 이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

마지막 사례는 1990년 대 중반에 영국의 왕립큐우식물원에 머물 때다. 서울에서 현장답사를 오는 팀을 위하여 며칠 전부터 여러 부서를 정하여 시간표를 작성하여 기다리고 있었는데, 벌써 다녀갔다고 한다. 그 때는 휴대폰이 없어서 사무실에서 계속 연락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귀국 후에 보니 매우 그럴듯한 보고서를 읽고 많은 실망을 한 적이 있다.

미국의 수목원을 처음 돌아 본지도 벌써 30년이 지났다. 그때 던졌던 질문과 답을 토대로 우리나라의 식물원과 수목원을 되돌아보면 아직도 우리는 가야 할 길이 매우 멀다고 느낀다. 아울러, 지금까지 수많은 해외 선진지 견학이 있었지만,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배운 점이나 얻은 정보를 어떻게 관리하고 공유하는가 라는 점에서는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꽤 많다. 이제는 우리도 새로운 사고패턴과 패러다임으로 선진지 답사를 하면 좋겠다. 최근 우리 수목원을 처음 찾는 분에게도 미국에서 터득했던 방식대로 소개하고자 노력 중이다.

김용식 천리포수목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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