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은 논산에 계셨고 나는 대전 작은아버지 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영어공부를 한다고 학원비를 받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보고 싶어 논산에서 늦게 버스로 대전에 오셨다. 영어학원에 들러 나를 찾았으나 학원 등록생 중에 아들 이름은 없었다. 어머니가 작은아버지 집으로 오셨을 때 나는 어머니가 알아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떨구고 혼나기만을 기다리는데 어머니는 나를 꼬옥 안으셨다. 학원에서 오시면서 계속 울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이 분명 돈이 필요했을 텐데 다른 집 아이 같으면 그냥 달라고 했을 텐데 우리가 형편이 좋지 않으니 아들이 돈 달라 소리를 못하고…그동안 들킬까봐 어린것이 마음 졸이며 살았을 것을 생각하니 계속 눈물이 났다면서 이젠 괜찮으니 더 이상 마음 졸이지 말라고 하면서 내 등을 토닥거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와 나는 떨어져 살았다. 그래도 어머니의 이런 애틋한 마음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 자주 가셨다. 아버지를 휠체어에 모시고 병원 복도를 다니다가 큰 거울 앞에서 "아버지, 웃어 보세요. 웃어야 힘이 나지요"하면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셨다. 30년 후의 내가 거기에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웃으면서도 한편 슬펐다. 어머니가 꼬마 중학생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아들이 아픈 아버지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공감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감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다. 공감은 가장 강한 소통이다. 어떤 조직이나 사회가 공감으로 소통하고 공감으로 하나 될 수 있다면 어려운 일도 극복할 수 있고 큰일도 성취할 수 있다.

공감으로 소통하는 방법은 역지사지하고 감정이입하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이 되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행정 현장에서 역지사지하고 감정이입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주민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민원을 제기하는 주민들도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법령, 예산 등의 제약으로 그대로 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저 함께 앉아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들어 주는 것만으로 공무원과 주민을 공감의 끈으로 묶어, 이해의 바탕에서 가능한 대안을 찾게 만든다. 충남 시군의 부단체장으로 일 잘 하기로 소문난 한 선배는 "주민이 얘기하는 것을 몇 시간이고 다 들으려고 노력했고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표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감은 감성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가슴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사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숨결처럼 작은 바람에도 일렁이는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크고 작은 유혹에 늘 시달리듯 우리 주민도 그런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행정이 열심히 훌륭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데 주민들이 지지하지 않는 어려운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이 경우 나는 주민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 데 주민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섭섭해 하면서 내 정책의 논리를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적절한 홍보는 소통을 위해 필요하지만 정도를 넘으면 그것은 이미 가슴으로 소통하려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소통하려는 것이다. 행정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주민의 입장을 듣는 것이 감성소통의 출발이고 감성행정의 핵심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지방정부와 지방공무원들이 돈의 눈이 아닌, 신의 눈이 아닌,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감성으로 주민과 공감하는 감성행정을 통해 지역의 큰 발전과 공직생활의 보람을 이루기 바라며, 시인의 감성과 공감능력을 배워 감성행정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필자의 졸시 `수상소감` 한 편을 남긴다.

`시인의 마음으로 행정을 할 겁니다 / 초승달을 보면 내 님의 눈썹을 떠올리는 창의성과 감수성으로 일할 겁니다 / 강과 느티나무와 꽃의 속삭임을 사람의 말로 옮기는 감정이입과 역지사지를 배울 겁니다 / 독자에게 내 시의 뜻을 강요하지 않는 의연함을 닮을 겁니다 / 새로 명함을 만들 겁니다 / 시인의 명함을 지니고 시인의 마음으로 시인의 손으로 세상을 만질 겁니다`

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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