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들을 돌보는 병동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했던 필자는 30년이 넘는 동안 현재까지 수많은 암 환자들을 봐왔다. 환자 분의 상태가 호전 돼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적도 많고, 영영 이별하게 돼 슬픔의 눈물을 흘렸던 적도 많다. 환자의 임종을 목격하는 것은 암 병동 간호사라면 절대 피할 수 없는 숙명인데 처음에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어린 마음에 크게 부담을 느끼고 여러 모로 힘들었다.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뒤돌아 울었던 적도 셀 수 없이 많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지난해 대장암 말기인 상태로 입원했다가 유성선병원 암 병동 내 임종실에서 세상을 떠난 70대 여성분이다. 어느 날 치료를 받다 본인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그 환자분은 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간호사들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40대 중반인 큰아들이 본인의 반대로 결혼식도 못 올리고 혼인 신고만 한 채 가족과 왕래도 못 하며 손주를 낳아 기르고 있는데, 막상 죽을 날이 가까워지니 너무 보고 싶고 세상에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분은 아껴주고 보듬어야 할 자식의 가슴에 못을 박고 떠나기 싫다며 후회된다고 눈물을 흘리셨다. 환자분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들의 결혼식을 치러주길 간절히 원하셨다.

환자 분은 온몸이 부어 거동이 불편했고,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심해 밖으로 나가기 힘든 상태였다. 그러나 암 병동 간호사들은 환자분이 마음이 얼마나 절실한 지 잘 알고 있었기에 꼭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 토의 끝에 방안을 마련해냈다. 그리고 이 소식을 환자 분과 환자분 남편, 딸에게 전했다. 간호사들은 가족들과 함께 항암주사실을 결혼식장으로 꾸몄다. 알록달록 풍선도 불어 붙이고 꽃으로 장식도 했다. 안색이 늘 어두웠던 환자분은 예식 당일 딸과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곱게 화장을 하고 아름다운 한복을 입었다. 그리고 두 손 잡고 들어오는 큰아들과 며느리를 함박웃음으로 맞아줬다. 축가를 부르고 예식이 끝날 무렵 큰아들 부부가 큰절을 올리자 양 손 벌려 안아주시며 "미안하다.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아들 내외 분도, 다른 가족들도 모두 숨죽여 울고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다.

환자분은 며칠 후 간호사들과 병원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며 가족들의 품에서 평온히 세상을 떠났다. 지난 설은 그 환자분의 가족이 환자분 임종 후 처음 맞는 명절이었다. 그분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명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영임 유성선병원 간호국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