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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칼럼] 허준, 유네스코 등재 10년된 동의보감

2019-02-19기사 편집 2019-02-19 13: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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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은 조선 중기에 동의보감을 집필한 한의사이며 선조와 광해군 때 어의를 지냈다. 선조 때부터 동의보감 집필을 시작해 광해군 때 완성했다. 동의보감은 이전까지 모든 서적을 모아서 새로 지은 조선의 대표적인 의학서다, 특히 2009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됐기 때문에 올해 7월이면 10년이 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보통 옛날 사람은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허준의 경우에는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출생연도와 사망연도가 정확하며 가계 이력까지 확실하다. 유년기는 불분명 하지만 성년부터는 조선왕조실록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일반인과 달리 어의라는 신분과 두 명의 임금을 모셨고, 왕 주위에서 치료를 했으므로 확실하게 기록된 면도 있을 것이다.

일례로 당시 세자였던 광해군의 두창을 고치고 양예수 등과 함께 선조의 병을 고쳐 호피를 받은 기록도 있다. 또 임진왜란이 발생한 뒤에는 선조가 의주로 피난 가는데 동행했으며 피난 중에 선조가 아프면 허준이 치료하는 등 동고동락했다. 덕분에 호성공신 3등에 제수된다.

맨 처음 동의보감을 만들라는 명을 받고 5명이 책을 만드는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서 중단 됐다가 혼자라도 만들라는 선조의 명을 받고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국가에서 만든 것 이지만 완성은 허준이 혼자 한 것이므로 허준의 단독저서로 보는 견해가 많다,

1604년 전쟁이 끝나고 양평군이라는 호성공신을 받고 숭록대부(崇祿大夫, 정1품)를 받으려 했으나 중인이라는 이유로 문인들이 반대해 받지 못하다가 사후에서야 내려졌다. 계급사회인 조선시대에 중인이 정 1품에 오른 것은 2명이라고 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말단 공무원에서 국무총리 혹은 부통령이 된 것이다.

1600년 내의원의 책임자인 수의(수석 어의) 양혜수가 죽자 그 뒤를 이어 받았으며, 선조가 승하한 뒤에는 관례에 따라 귀향을 귀향을 가게 된다. 하지만 귀향 덕분에 여유 시간이 많아 져서 동의보감을 완성 할 수 있었다. 이후 광해군이 허준을 사면, 1610년에 동의보감을 완성하고 1615년에 사망했다.

현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나 TV 등 미디어를 통해 허준을 접하고 있다. 특히 여러 차례 드라마로 만들어 졌는데 왕이 아닌 인물로 4번이나 사극이 만들어 진 것은 드물다. 또 드라마로 인해 한의대에 입학한 학생도 상당수이며 2000년 대 초반 한의대 입학 성적이 올라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또 작가 이은성이 지은 소설 동의보감은 1990년에 나왔는데, 당초 춘하추동 4권으로 출판할 예정이었으나 작가가 사망하는 바람에 상, 중, 하 3권으로 줄여서 나왔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관련 내용이 실렸으며 그동안 몇 십 판을 찍어내서 부도 직전에 처했던 출판사가 기사회생 했다는 후일담도 전해진다. 구원회 (구원회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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