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금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고 있는 2019 AAAS Annual Meeting에 참석 중이다. 매년 2월에 열리는 이 행사의 금년도 주제는 `Science Transcending Boundries`이다. `경계를 초월하는 과학`이라는 말 그대로 과학이 실제로 존재하는 국경 뿐 아니라 성별, 사상, 종교, 전통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마저 허물어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주제 아래 세계적인 석학들이 과학이 제시하는 밝은 미래 뿐 아니라, 과학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에 경종을 울리며, 세계인이 함께 그 해법을 모색한다.

특히 올해는 멘델레프의 주기율표가 발표된 후 150년, 아폴로 13호가 달에 착륙한 후 50년, 현대 인터넷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알파넷(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Network, ARPANet)을 통해 UCLA로부터 Stanford Research Institute로 메시지가 전달된 후 50년을 기념하는 행사도 함께 열려 과학적 진보를 축하하고 있다. 주기율표 탄생 150년을 기념하는 세션에서는 프린스턴 대학의 마이클 고딘(Michael Gordin) 교수가 1869년 2월 주기율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들려줬고, 미시건 주립대학의 제임스 맥 커스커(James McCusker) 교수와 Lawrence Berkeley 연구소의 잭린 게이트(Jacklyn Gate) 박사는 주기율표가 이끈 과학의 발전과 새로운 원소를 찾는 과학계의 치열한 연구 현장을 소개했다. Plenary Session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간은 AAAS 마가렛 함부르크(Margaret Hamburg) 회장을 비롯하여 일본, 남아프리카, 캐나다, 벨기에, 영국의 대표들이 참여한 패널 토론이었다. `Responding Faster and Smarter to New Problems`라는 제목의 이 토론에서는 기후변화, 사이버 보안, 감염병 등 인류가 대면한 도전에 연구소와 연구비 지원 기관, 그리고 기업체들이 어떻게 빠르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이 이뤄졌다.

이와 함께 열리는 빼놓을 수 없는 행사가 AAAS 패밀리 사이언스 데이(Family Science Days)이다. 가족들과 손에 손을 잡고 온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세계적인 연구자와 기업가들의 강연을 듣고, NASA 등 꿈의 연구소와 유명 대학에서 전시한 연구 성과물들을 관람하며, 독일, 영국, 일본, EU 의 연구 전시도 둘러볼 수 있다. Expo 행사에는 여러 대학과 연구소에서 만든 로봇이 전시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도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부스를 만들어 우리나라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 성과를 전시하고, `친환경 저탄소 사회 구현`과 `남북 과학기술협력`을 주제로 두 개의 세션을 구성해 많은 참가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우리나라 R&D 투자액이 20조를 넘어섰다. 투자 규모만 보면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과연 과학기술 선진국일까? 2018 IMD 국가 순위를 보면 국가 발전의 인프라로서 우리나라의 과학과 기술 경쟁력 수준은 각각 7위와 14위로, 27위에 그친 국가 경쟁력 대비 높게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AAAS에 참석해 논의되고 있는 주제들과, 참여하는 연구자들, 그리고 관심을 갖는 일반 시민들을 보며 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 투자가 많다고, 논문이 많이 발표되고 특허를 보유했다고 과학 선진국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 다양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학이 어떻게 답할 것인가, 과학기술의 발전이 야기하는 부작용은 어떻게 최소화 할 것인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등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소위 벼락부자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학 축전과 대규모 학술 행사에서도 사회 양극화, 식량과 기아 문제, 양성 평등과 성 소수자 문제 등의 주제를 찾아볼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면 좋겠다.

한선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본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