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영 작가
김근영 작가
스스로의 작품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

그림 그리는 필자가 음악을 감상하러 갔다. 난 지금 예술가인가? 관객인가? 작업하는 시간에 라디오를 틀어도 음악이 나오고 가끔 영화를 보고 신나면 노래방에서 춤도 추고…. 난 관객이 아니어도 괜찮은가?

작품은 오롯이 작가의 소유물이며 관객들의 상상력을 배제하고 소멸되는 순간까지 작가 의식만을 반영해야 하는 것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더 이상 모나리자를 통해 웃지 않는다. 모나리자는 이미 하나의 주체(主體)로서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작가를 만드는 것은 괴팍함이나 자유분방함으로 무장된 스스로의 겉치레가 아니라 남겨진, 또는 앞으로 행해질 작품에 남아있는 의미론적 자생력에 있다는 것이다.

작품을 발표할 때면 `자신의 분신과도 같다`고 말하며 누군가에게 작품을 보내야 할 상황이 되면 `시집을 보낸다`는 표현을 써가면서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작품 스스로 생명력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작가가 작품을 품을 수 있는 것은 거기 까지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유동성 있게 살아 움직이는 것에 관대해 져야 한다. 비록 `작가론`이 다른 이들에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더라도 말이다.

단순한 창작물도 보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다면 창조물이 될 수 있다. 당신의 작품이 `창작물`을 뛰어 넘어 `창조물`이 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봐야 한다. 분명한 것은 당신의 작품은 당신의 삶보다 더 긴 여정을 떠날 것이고, 더 많은 사람과 만나 교감할 것이다.

겸손해야 한다는 식상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앞에 겸손해져야한다는 것은 작가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필자가 이야기 하는 겸손이란 먼저 자신의 작품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력을 지닌 작품을 작업실 먼지 구덩이 속에 파묻고 있지는 않은지 창작물을 내 욕심으로 가두어 두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한다. 끊임없이 발표하고 또다시 창작해야한다. 하루 종일 작업실 구석에서 물감과 씨름하고 있는 당신이 못하는 일을 작품은 할 수 있다.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당신만 자유로워서야 되겠는가? 수도승처럼 작업하고 작품 앞에서는 전도사처럼 움직여야 한다.

김근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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