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전 오늘인 1930년 2월 18일은 당시 24세 대학생이었던 클라이드 톰보(Clyde Tombaugh, 1907-1997)가 지금은 왜소행성으로 분류돼 있으나 한동안 태양계 9번째 행성의 자리를 차지했던 명왕성(Pluto)을 발견한 날이다.

1800년대 중반, 8번째 태양계 행성인 해왕성(Neptune)이 발견되기 전부터 이미 과학자들은 천왕성 궤도 바깥에 또 다른 행성의 존재와 위치를 예측하고 있었다. 이후 해왕성이 발견되고 난 다음, 당초 계산했던 해왕성 궤도의 오차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천문학자 퍼시빌 로웰(Percival Lowell, 1855-1916)은 해왕성 너머로 다른 행성이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인 1883년 로웰은 일본 관광 중에 주일미국공사의 요청으로 조선의 미국 수호통상사절단을 미국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아 샌프란시스코와 보스턴 일대를 돌며 번역, 보좌업무 및 통역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조선으로 귀국한 사절단의 일원이었던 홍영식은 로웰의 공적을 고종에게 보고해 그를 국빈 초청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고종의 공식 초청을 받은 로웰은 같은 해 12월에 조선을 방문해 3개월간 한양에 머물면서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경험과 고종의 어진을 포함한 풍경사진 25매 등을 백과사전 형식의 기록으로 정리해1885년에 내놓은 책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었다. 이때부터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별칭이 한국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은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1894년 로웰은 아리조나주에 천문대를 건설하고 9번째 행성을 찾는 데 전력을 다했으나 결국은 발견하지 못하고 1916년 사망하기에 이른다. 로웰 사후에 로웰의 아내가 제기한 천문대 지분에 대한 상속권리 소송으로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던 가운데 1929년 보조 천문학자로 일하던 클라이드 톰보에게 9번째 행성을 찾기 위한 업무가 인계됐고, 동일한 지역을 2주 간격으로 찍은 방대한 분량의 사진을 계속해서 분석하던 톰보는 1930년 1월에 찍은 2장의 사진속에서 위치가 변화된 새로운 천체를 2월 18일에 발견해 하버드대학 천문대에 공식 알림으로써 그의 발견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당시 찍었던 사진의 영상품질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보니 로웰도 1915년에 명왕성이 담긴 사진을 촬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밝혀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갔다는 것이 이후에 밝혀졌다.

새로운 별의 명명 권리를 가지고 있던 로웰 천문대는 1000건 이상의 제안을 가운데, 영국 옥스퍼드에 살던 11세 소녀 베네티아 버니가 태양계 바깥쪽에 태양 빛이 잘 비치지 않아 어둡고 추운 곳에 있는 존재로 적합한 로마신화의 지하세계(저승)의 신 Pluto를 공식 채택하고 이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새롭게 발견된 원소에 행성의 이름을 붙이던 관례에 따라, 당시에 발견되어 핵무기의 원료로 사용되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이름이 플루토늄으로 지어졌다. 월트디즈니의 대표 내니메이션 캐릭터 미키마우스의 동료인 개의 이름이 플루토(Pluto)가 1930년에 등장한 것은 태양계 행성의 발견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한다.

명왕성은 달의 부피의 3분의 1정도인데다 명왕성과 비슷한 궤도를 도는 소행성 들이 다수 발견되면서 2006년에 개최된 국제천문연맹 총회에서 유사 천체와 함께 왜소행성의 범부로 분류해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2006년에 발사되었던 NASA의 뉴호라이즌호는 명왕성에 1만2500km까지 근접하면서 허블 우주망원경보다 더 고해상도의 명왕성 사진을 컬러로 보내온 바 있다. 톰보의 유해의 일부를 탐사선에 실어 보내는 것을 국가가 주도하는 탐사계획의 일부로 지정한 것만 보더라도, 당장 세상을 편리하게 하고 경제성 있는 발명은 아니지만 세계관을 바꾸는 발견을 위해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특별대우하는 미국사회의 성숙된 문화는 단기간에 돈 되는 성과를 우선시하는 우리사회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주광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미래융합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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