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외국의 한 언론이 우리나라 공무원시험(공시) 열풍을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해당 언론은 한국의 공시 관문 통과가 하버드대 입학보다 어렵다며 젊은이들이 경기 침체 여파를 받지 않는 공공직에 대거 몰린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공시생은 몇 명이나 될까? 지난해 발표된 한 박사 논문은 한국 공시생 수를 약 44만 명으로 추산했다. 공시생 규모가 50만 명에 달한다고 말한 국회의원도 있다. 공시생 44만 명은 만 20-29세 우리나라 청년 인구의 약 6.8%, 2018학년도 수능 응시자의 약 75%에 이른다.

SKY를 나왔든 지방대를 졸업했든 고교 동창들이 공무원 시험장에서 만난다는 이야기가 더 이상 우스개 소리만은 아니다. 외국에서 이색 풍경으로 비춰질 만큼 대한민국 많은 청년들이 공시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업 안정성이 첫 번째로 꼽힌다. 바늘구멍을 통과해 대기업에 입사해도 정년까지 근무가 쉽지 않지만 공무원은 정년 보장으로 직업 안정성이 뛰어나 몇 년쯤 공시에 투자해도 합격만 하면 손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안정성 선호를 나무랄 순 없지만 우려는 있다. 정권마다 한결같이 규제 개혁을 외치면서도 실질 성과가 부진한 데에는 제도 뿐 아니라 사람 문제가 뿌리 깊다. 직업 안정성을 최고 가치로 공직에 입문한 이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민간의 혁신을 촉진하고 장려하는 매개기관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가뜩이나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공공기관에서 직업 안정성을 중시하는 공무원들이 법적이고 형식적인 자구에 집착하고 매몰될 때 민간의 혁신성은 물거품 된다.

`심경부주`에 실려 있는 주자의 말은 오늘도 유효하다.

"오로지 과거공부만 하는 사람이 과거에서 써내려가는 답안지를 보면 모두 성현의 말씀이다. 청렴에 대해 논하라면 잘 할 수 있고, 의에 대해 논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스스로는 청렴하지도 의롭지도 않으니, 많은 말을 하지만 단지 종이 위에서만 말하기 때문이다. 청렴도 제목상의 청렴이고, 의도 제목상의 의에 불과하니 모두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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