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신작가론1

2019-02-12기사 편집 2019-02-12 09: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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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김근영 작가

일제강점기의 영향이었으나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를 '국보 몇 호', '보물 몇 호'라며 숫자로 표기하고 아직도 그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이걸 보면 한국인들은 숫자라는 굴레에 스스로 얽매여 있는 듯하다. 그것뿐인가? 세계가 선정한 몇 위의 관광 도시, 꼭 봐야할 또는 꼭 먹어봐야할 음식 10선 같은 무수히 많은 숫자의 세계에 갇혀 있다.

이 숫자라는 개념에서 살짝 벗어나있는 교육 분야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미술이다. 창의력에 좋다하니 아이를 미술학원에 보내기는 하는데 제대로 실력이 늘고 있는지 창의력에는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태권도 학원이면 몇 품, 몇 단, 피아노 학원도 체르니 몇 번이라 명시해 놓으니 그나마 아이의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겠는데 미술은 그렇지 않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답답할 일이다.

작가라는 직업도 그러하다. 세상에는 많은 작가가 있다. 1년에 한 작품을 하더라도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니 나는 작가이고 내 작품은 그만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아집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도 있다. 예술작품은 신께 바치는 숙제 검사가 아니니 그들의 결과물만을 놓고 말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들의 잘못된 의식이 진심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데 문제가 있다.

다시 우리가 좋아하는 숫자로 다시 돌아가 쉽게 풀어보자. 아주 쉽고 간단한 문제다. 누군가는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을 만들기 위해 아침에 출근해 저녁까지 옷을 만든다. 또 누군가는 당신을 위해 쌀을 재배하고 가축을 돌본다. 일정한 시간을 직업이라는 행위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직업이다. 당신이 신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존재이면 모르겠으나 현실을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만큼의 시간을 당신의 직업에 투자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림은 손이 아니라 엉덩이로 그린다는 뜻의 상투적인 말은 아니다. 자신의 직업, 즉 작품에 대한 생각과 행동을 포함한 모든 노력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늘 작품에 대한 고뇌에 차있다고 해서 또는 전시장을 들락거린다고 해서 작가가 아니다. 이는 누구 말처럼 설계도면만 잔뜩 쌓아서 건물을 짓겠다는 것과 같다.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을 뿐 뭐 대단한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다.



김근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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