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휴가철 등 연휴기간이면 경험하는 고속도로 위 `유령정체`는 운전자에겐 큰 골칫거리이다. 사고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공사로 인해 길이 좁아진 것도 아닌데 몇 시간째 길 한복판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운전자의 기분은 마치 `사이다 없이 고구마를 먹는 것`처럼 답답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 미스터리한 정체 현상의 발생 원인은 의외로 단순한데 있다. 바로 `앞 차의 브레이크 페달`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인해 앞 차의 운전자가 속도를 늦추면 뒤 따르는 차들도 연달아 브레이크 페달을 밟게 된다. 이 때 갑작스런 감속을 경험한 뒤차 운전자는 충돌의 위협을 느껴 앞 차의 감속 정도보다 더 급히 페달을 밟게 된다. 이 같은 운전자 간 반응속도의 차이로 인해 선두 차에겐 일시적인 감속이 차량 후미로 갈수록 정체 현상으로 심화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령정체 현상의 발생 원인을 통해 한 가지 흥미로운 가정이 성립한다. 자율주행 기술의 구현으로 운전자의 반응속도라는 인적 변수를 제거할 수 있다면 고속도로 위 정체는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자동차의 자율주행 기술은 부분적으로 운전자를 보조하는 반(半)자율주행 단계까지 이르렀으며 2020년에 들어서는 보다 완전한 수준의 자율주행이 가능해질 전망이니 머지않아 고속도로 위 우리의 표정도 한결 여유로워 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자율운전`의 개념이 원자력발전소에선 이미 적용 중이며 그 기술력 또한 상당 수준에 이르렀음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현재 원자력발전소는 안전시스템의 완전자동화로 조건부 자율운전이 가능하다. 엄밀히 말하면 자율운전 기술이 부분 가능 단계에 그치고 있는 자동차에 비해 오히려 한 단계 더 앞서있는 셈이다.

원전은 자동차보다 훨씬 많은 부품으로 복잡하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일찍이 많은 부분에서 자동화가 이뤄져왔다. 실제로 평상시엔 운전자의 개입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원전이 가동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는 항공기가 이륙한 후 자동항법시스템으로 비행하는 것과 유사하다. 물론, 원전과 항공기 모두 운전 중 이상신호를 관찰해 상황을 판단하거나 고장 시 비상대응을 하는 것은 운전자(혹은 조종사)의 몫이다. 비록 조종사들이 고도의 훈련을 받았으며, 여러 사고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다고는 하나 작동의 주체가 사람인 이상 실수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미래에 완전 자율화된 원전 자율운전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이러한 실수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율운전기술은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 향상에도 크게 기여하지만 원자력 기술을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는 데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일례로, 북미에서는 광산이나 알래스카 인근 원주민 거주지에서 사용하기 위한 소형원전을 개발하고 있다. 도심에서 수 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오지(奧地)까지 연료를 운반하는데 많은 비용이 소요될뿐더러 운송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위험도 매우 높다. 반면, 소형원전이 설치될 경우, 외부로부터의 연료 공급이 없이도 최소 5-10년간 해당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지역에서 소형원전이 효율성을 가지려면 자율운전이 기능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지금의 원전은 1기를 운전하기 위해 200여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한데 소형원전의 운전을 위해 이처럼 대규모 인력을 오지에 보내야 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전 자율운전기술이 산업 곳곳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날 전망이다. 미래 산업 분야로 각광받는 우주산업의 경우, 탐사용 원자로 개발을 위한 노력이 이미 진행 중이다. 미국 우주항공국(NASA)은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와 공동으로 우주탐사를 위한 자율운전 초소형원자로를 개발해 완전 자율운전이 가능한 원자로 탑재 무인 우주선을 화성 탐사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영화 아이언맨과 같이 최근 SF 장르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인공지능(AI) 기술과의 접목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원전 자율운전 기술은 단순한 원자력 관련 기술이 아닌 21세기 고부가가치 창출의 원동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원자력의 비중이 점차 축소되는 상황 속에서 자율운전 기술은 우리 산업계의 판도를 흔들 수 있는 히든카드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안전한 원전 운영의 핵심 기술을 넘어 에너지, 우주,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산업 간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해당 기술의 발전에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하는 이유이기도하다.

임채영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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