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도 그림책이 있었다. 1124년에 제작된 이 책의 이름은 `선화봉사 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다. 송 나라의 사신(使臣) 서긍(徐兢)이 휘종 황제(1100-1125 재위)의 명을 받고, 1123년 고려를 다녀간 후에 작성한 일종의 보고서가 바로 `고려도경`이다. 우리가 보고서를 작성할 때,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이나 도면, 그래프 등을 첨부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서긍은 이 보고서에 고려의 이모조모(궁궐, 복식, 풍속, 무기, 물건, 바닷길 등)를 열심히 기록하고, 그림으로 남겼다. 서긍은 그림을 첨부하는 수준을 넘어, 시각자료(그림)을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이 보고서를 완성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려도경은 `정강의 변(금나라가 송나라로 쳐들어와 북송을 멸망시키고 황제를 볼모로 끌고 간 사건)`을 겪으면서 그림 부분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 후에 서긍은 다시 그리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900여년이 흐른 지금도 고려도경은 그림 없는 그림책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고려도경의 기록은 짧은 시간동안 중국 이방인의 눈에 비친 고려의 모습이라는 한계 때문에, 기록된 내용이 모두 옳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실제 유적과 유물 그리고 다른 기록들과 비교하며 연구하고 있다.

고려도경의 `해도(海道)` 편에서는 고려의 서·남해 바닷길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서긍의 항로가 중요한 이유는 당시 고려의 조운로와 매우 비슷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해도 편의 그림이 남아 있었다면, 충청도 연안의 항로를 한 장의 그림으로 정확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서긍의 항로 중 충청도 연안의 항로는 지금의 홍성, 보령과 태안의 거아도, 마도 일대로 추정되는데, 이를 증명하듯 이 일대 해역에서는 고려시대 침몰선들이 여러 척 발견되었다. 보령 원산도와 태안 마도에서는 발견된 고려시대 침몰선에서는 다량의 청자와 유물, 목간(木簡)들이 확인되어 매우 의미가 있다. 그리고 `기명(器皿)` 편에서는 당시 고려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를 통해 보령·태안에서 발견된 도자기나 물품에 대한 연구도 심화될 수 있다. 기명 편에는 기명 하나하나의 형태를 묘사하고 용도, 크기 그리고 용량까지 기록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이 수치들은 아직까지 연구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는데, 비록 오차가 있을지라도 고려의 문화와 유물을 새로운 방법으로 연구하고 복원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고려도경에는 현재의 우리가 역사와 문화유산을 이해하고 연구할 수 있는 수많은 열쇠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학자들이 여러 가지 열쇠들을 가지고 고려의 수수께끼들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도 그림 없는 그림책인 `고려도경`의 숨은 그림을 찾기를 시작한다. 900여 년간 미뤄졌던 그림을 완벽하게 한 번에 그려낼 수는 없지만, 다양한 시도와 연구를 통해 고려도경이라는 그림책의 그림을 차근차근 그려보고자 한다.

박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