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도경의 기록은 짧은 시간동안 중국 이방인의 눈에 비친 고려의 모습이라는 한계 때문에, 기록된 내용이 모두 옳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실제 유적과 유물 그리고 다른 기록들과 비교하며 연구하고 있다.
고려도경의 `해도(海道)` 편에서는 고려의 서·남해 바닷길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서긍의 항로가 중요한 이유는 당시 고려의 조운로와 매우 비슷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해도 편의 그림이 남아 있었다면, 충청도 연안의 항로를 한 장의 그림으로 정확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서긍의 항로 중 충청도 연안의 항로는 지금의 홍성, 보령과 태안의 거아도, 마도 일대로 추정되는데, 이를 증명하듯 이 일대 해역에서는 고려시대 침몰선들이 여러 척 발견되었다. 보령 원산도와 태안 마도에서는 발견된 고려시대 침몰선에서는 다량의 청자와 유물, 목간(木簡)들이 확인되어 매우 의미가 있다. 그리고 `기명(器皿)` 편에서는 당시 고려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를 통해 보령·태안에서 발견된 도자기나 물품에 대한 연구도 심화될 수 있다. 기명 편에는 기명 하나하나의 형태를 묘사하고 용도, 크기 그리고 용량까지 기록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이 수치들은 아직까지 연구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는데, 비록 오차가 있을지라도 고려의 문화와 유물을 새로운 방법으로 연구하고 복원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고려도경에는 현재의 우리가 역사와 문화유산을 이해하고 연구할 수 있는 수많은 열쇠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학자들이 여러 가지 열쇠들을 가지고 고려의 수수께끼들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도 그림 없는 그림책인 `고려도경`의 숨은 그림을 찾기를 시작한다. 900여 년간 미뤄졌던 그림을 완벽하게 한 번에 그려낼 수는 없지만, 다양한 시도와 연구를 통해 고려도경이라는 그림책의 그림을 차근차근 그려보고자 한다.
박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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