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선보였을 때 뉴욕 타임스의 평가는 냉담했다. 무대기술은 뛰어나지만, 가사와 안무가 단조롭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며 깎아내렸다. 하지만 이런 평가와 달리 오페라의 유령은 연일 관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단순히 공연만 히트를 친 것이 아니었다. 공연을 보고 감동한 관객들은 팸플릿은 물론 작품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머그컵, 모자, 포스터까지 사들였다. 오페라의 유령은 30년 전에 개막해 아직까지도 오픈 런 공연을 이어갈 정도이며, 전세계를 돌며 2만회 이상 공연을 선보였다. 명실공히 세계 문화상품의 대표로 자리매김했으니 부가가치는 값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1989년에 탄생한 `미스 사이공`도 초창기 평단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사실 미스사이공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배경만 바꿔 뮤지컬로 옮긴 것으로, 가해자가 구원자로 둔갑하는 설정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17세 베트남 처녀 킴과 미군 장교 크리스의 운명적 사랑, 짧은 만남과 긴 이별, 전쟁과 고초 등 드라마틱한 스토리라인과 아름다운 뮤지컬 선율이 맞아떨어지면서 관객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관객의 호응속에 이 작품은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뒤 2년 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로 진출했고, 현재까지도 국내 뮤지컬 마니아들이 보고 싶은 공연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좋은 공연과 전시는 도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매개체이자, 도시의 정체성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시그니처다. 공연 한편을 보기 위해 그 나라와 도시를 방문하는 것은 이제 여행의 필수코스가 됐다. 하지만 대전방문의 해를 맞은 올해 대전은 외지인과 외국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공연, 전시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개관 16주년을 맞는 대전예술의전당도, 21주년을 맞은 대전시립미술관도 대전에서만 볼 수 있는 대표 공연, 전시 하나를 만들지 못하고 대형기획사에만 의존하는 형국이다. 한해 수 십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으면서도 반짝 하고 끝나는 대형공연, 기획사 낀 대형전시 하기도 급급해 저작권, 공연권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면 대전을 대표하는 공연은 `오페라의 유령`과 `피카소` 전시로 기억될 지도 모를 일이다.

원세연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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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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