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내 둘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매양 의미를 부여하고 이마를 치면서 삶을 무겁게 하지는 않는가? 타인의 시선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옥처럼 빛나고자 전전긍긍하며 떨고 있지는 않는가?

이러저러한 바깥의 바람을 잘 견디어 약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은 나이, 적당히 세상을 알아본 후라 막무가내로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기 기준에 맞추어 잘라버릴 일도 없는 나이, 그러니까 50대 뱀띠 몇 명이 뭉쳐서 짧은 여행을 하고 왔다. 살림을 꾸리느라 각자 하는 일은 다르지만 먼 데 같은 별을 향해 걸어가는 친구들이라 말하지 않고도 마음이 통했다.

`양양 바닷가에 조그만 아파트를 마련해놨으니 좋은 사람들 있으면 언제든 머물다 가라`는 서울 사는 친척의 말이 생각나 누구 다른 손님과 겹치지 않나 확인하고 행선지로 정했다. 제천에 가서 한 친구를 더 태우고 얼음축제가 한창인 의림지에 먼저 들렀다. 얼음성에 몰래 숨어 들어가 서늘한 사진을 남기고 나오는 길에 눈싸움을 하면서 우리의 웃음이 시작됐다.

주문진 수산시장에 가서 펄떡이는 납작한 돌덩이 같은 광어와 우럭, 오징어, 멍게를 좀 사고 `도취와 망각`을 위해 술도 조금 샀다. 숙소에 도착하니 간간히 뒤척이는 소리를 낼 뿐 바다는 보이지 않고 그저 캄캄하기만 했다. 여행 날짜를 잡던 순간부터 우리는 가슴에 출렁이는 바다를 키우며 해변의 모래 이야기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튿날 새벽이 돼 창밖을 보니 바다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참 많이 웃었다. 얼굴이 웃고 가슴이 웃고 몸속의 간도 웃는 것 같았다. 유년의 슬픔을 이야기할 때는 어리둥절해하며 흰 눈송이들도 유리창 밖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모처럼 동해 바다를 어찌나 깊고 푸르고 말할 수 없이 아름답던지…. 물리적으로 충분한 시간이 아니고 잠깐 짬을 낸 것이라 더 여유 있고 치밀하게 시간을 파괴하지는 못했다. 이제 다시 일상에 묻혀서 세상의 잡다한 일들과 마주하게 되겠지만, 발목 잡힌 방아깨비처럼 시간의 부속품이 되어 좌절과 분발을 되풀이하며 살아가겠지만, 후일을 기약하는 유쾌한 모의를 하면서 돌아오는 길 내내 겨울 햇살이 푸졌다.

이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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