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존경하는 선배가 글씨를 보냈다. 약팽소선(若烹小鮮). 노자의 치대국 약팽소선(治大國 若烹小鮮)에서 나온 말이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도 작은 생선을 요리하듯 하라는 말이다. 작은 생선을 요리할 때 노심초사하여 자꾸 생선을 뒤집으면 요리를 망칠 수 있으니 요리사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만났을 때 "(행정자치부) 차관이 되었으니 모든 일을 일일이 다 챙기려 하지 말고 직원들을 믿고 그들에게 맡겨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1989년 대전이 광역시로 승격될 때 충남도청의 인력배분 계획에 따라 도에서 시로 옮긴 필자는 종종 사무실에서 밤을 새워야 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 당시 충남도의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명절날 모처럼 방문한 아들의 지친 모습을 보고 당신의 근무지였던 부여에서 대전까지 우리 가족을 태우고 손수 운전하셨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아범아, 유능한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기껏 두세 사람 몫 밖에 해내기 힘들다. 사무관은 관리자이니 혼자 일하지 말고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라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9급 공무원부터 출발했기에 공직 기간 내내 관리자로서 보다는 직원으로서 많은 상사들을 겪어 본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었을 것이다. 10여 년 후 미국 유학 중 관리(Management)를 "다른 사람이 일하게 하는 것(Management is to make other persons work)"이라고 간단히 정의하는 것을 보고 새삼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민선 7기 지방자치가 2년 차에 접어든 지금, 자치단체장의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 본다. 대부분의 자치단체장들은 대단한 경륜을 지녔다. 정치와 행정에서 다진 경험에 더해 재선·삼선 자치단체장은 이미 그 지역에서 세세한 공직경험까지 쌓았다. 인적 네트워킹의 경우에도 따를 자가 없다. 여기에 더해 일부 자치단체장의 경우에는 60살이 정년인 행정조직에서 나이까지도 가장 많다. 이쯤 되면 조직 내에서 그들보다 더 많이 알고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경륜이 부족한 직원들의 일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질책하거나 직접 나서서 문제를 쉽게 해결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때부터 직원들은 입을 닫는다.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나섰다가 일이 잘 안되어 곤혹스러워지기보다는 미리 물어보고 시키는 일만 하게 된다. 자치단체장이 직접 나서면 쉽게 풀리는 것을 보았기에 일이 해결되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을 칭찬하기만 하면 된다. 실패할지라도 도전하려는 의지와 열정보다는 그저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것에 익숙해진다. 심지어는 자치단체장의 마음에 불편할 것 같은 것은 보고조차 하지 않는다.

이제 수백 또는 수천 명의 조직에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도전하려는 자는 자치단체장 한 사람 밖에 남지 않는다. 간부회의에서 활발한 토론으로 창의가 넘치고 함께 결정한 그 일들을 서로 해내겠다고 앞 다투어 도전하던 생기발랄했던 조직이 몇 년 뒤 한 사람 외에는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침체된 조직으로 바뀐다.

다들 자치단체장이 되면 지역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이러이러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전임자에 비해 혹은 지난번의 나와 비교해 다른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불행히도 아무 것도 없다. 같은 공무원, 같은 주민이다. 법령과 예산도 4년 동안 원하는 만큼 획기적으로 바뀌지도 늘어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라. 리더가 바뀌었다. 리더십 하나면 충분하다. 마치 동일한 대본과 작곡을 가지고 있는 백년 전의 오페라가 지금도 공연되고 그것의 성패는 주연 오페라 가수가 아리아를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있듯이, 주연 가수인 자치단체장이 어떤 리더십으로 주어진 법령과 예산을 직원들과 함께 연주하면서 관객인 주민들에게 선사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결국 핵심은 혼자 일하는 조직이냐, 여럿이 힘을 합쳐 일하는 조직이냐의 문제이다. 민선 7기 2년차 새해에 자치단체장들이 만기친람하지 않는 약팽소선의 리더십으로 직원들의 능력을 믿고 그들을 성장시키면서 크게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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