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더 바이러스), (더 테러 라이브) , (숨바꼭질), (설국열차)

모두 2013년에 발표된 영화들이다. 각 영화는 위험사회의 현상들, "바이러스", "테러", "도시괴담", "계급 간의 생존투쟁"을 고발하거나 경고한다.

다섯 명의 감독들은 도대체 어떤 연유로,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나란히 2013년에 사회의 위험 요소를 이야기하는 영화를 제작했을까? 언제나 노출되어 있었지만 심각하게 감지하지는 못했던 사회의 위험 징후들을, 감독들은 영화화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감기>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사스 광풍이 불었던 2006년,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영화에서는 치명적인 감기 바이러스가 호흡기를 통해 번지면서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로 시민들은 바이러스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혼란에 빠진다. 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감기>의 이야기가 정말로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서구를 중심으로 추구해온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이 실제로 가공스러운 `위험사회`를 낳는다고 주장하며 1986년 <위험사회, risk society>를 발표했다. 벡은 1986년 4월 러시아(구 소련)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 소식을 들으며 책을 서둘러 완성했다고 한다.

벡은 자연에 의해 초래되는 기존의 위험(danger)과 사람에 의해 인위적으로 초래되는 위험(risk)을 구분한다. 벡은 후자를 `생산된 불확실성(manufactured uncertainty)` 혹은 `생산된 위험(manufactured risk)`이라고 했다. 벡이 말하는 위험은 사회경제적 발전에 따른 의도되지 않은 부작용으로서의 위험을 말한다.

울리히 벡은 "생산력은 근대화 과정에서 그 순결을 잃었다. 초기 단계에서 위험은 `잠재적인 부수효과`로 합법화될 수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공장이나 직업에 관련된 위해와는 달리, 이 위험은 더 이상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 한정되지 않으며 국경을 넘어서서 생산 및 재생산 전체에 퍼져가는 지구화의 경향을 보여준다."라고 말한다.

울리히 벡의 유명한 명제는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이다. 산업사회에서는 부유한 사람들이 위험적인 상황에 덜 노출되어 살아가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위험적인 상황에 보다 많이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위험사회에선 이러한 상관관계가 깨진다. 왜냐하면 위험사회의 위험과 위협은 시공간적 제한을 벗어나고 경제적인 지위와 상관없이 도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한 울리히 벡은 "세월호 참사에서 한국 정부는 무능과 무지를 드러냈습니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주장하며 그 원인 중 하나로 `조직화된 무책임`을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는 무능한 정부, 무책임한 선박회사, 비겁한 선장과 선원들이 만들어낸 인재다.

벡 교수는 "중요하고 비슷한 사건이 계속 일어나면 분노와 깨달음이 반복되면서 탈바꿈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지난 경험을 기억하는 것과 언론이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벡 교수는 성찰적 근대화를 제안한다. 위험에 대한 준비를 국가와 전문가에게만 맡기지 말고 모든 시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공론의 장을 만들어 해결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험사회 해결의 출발점은 "나는 두렵다!"는 불안의 공동의식에서 시작된다. 위험에 대한 지식을 확산시키며 해석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확대되어야 한다. 세월호에서 경험한 것처럼 중앙정부에 기대기보다 시민참여를 통한 신뢰 회복을 기반으로 위험관리를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중앙정부를 불신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시민참여에 기초해서 신뢰성을 쌓아가지 않으면 위험관리는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 첫머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 감독들의 경고도 시민참여의 한 역할로서 우리가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정영기(호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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