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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록 재밌는 문화재] 백제의 하이테크 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

2019-01-25기사 편집 2019-01-25 0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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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테크(High-Tech)는 고도로 발달된 첨단 과학 기술을 뜻한다. 현재도 그러하듯 이러한 첨단 기술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될 만큼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관리되고 외부로의 유출을 철저히 차단한다. 고대에도 이러한 기술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권력이 집중된 중앙에서 철저히 감독하여 정치적 혹은 외교적 차원에서 각 지역 엘리트들에게 적절하게 사용되었고 이는 특정 계층만이 향유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러한 하이테크가 적용된 고대 물품 중에는 백제(B.C.18~A.D.660)의 흑색마연토기가 있다.



흑색마연토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 중 유독 백제에서 두각을 보이는 토기로 평가받는다. 1969년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일대의 백제 고분에서 출토되면서 우리에게 처음 알려졌다. 표면은 반짝반짝 검은색 광택이 돌아 영롱하고 외면에는 음각의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여타 토기들과 외관상 차별성을 보이는 누가 봐도 가치 있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발견 이래로 근래에까지 이러한 흑색마연토기가 어떠한 방법으로 제작된 건지는 규명되지 않았었다. 표면에 검은색을 내기 위해 흑연이나 망간을 발랐다는 견해, 옻칠을 했다는 견해, 산화철을 발라 환원상태로 구웠다는 견해, 외국에서 수입해 왔다는 견해 등 다양했다.



이렇듯 제작 기술이 베일에 싸인 흑색마연토기는 지금까지 백제의 왕성이 있었던 서울지역에서 가장 많은 수량이 확인되었고, 확인된 유적도 무덤뿐만 아니라 생활유적에서도 다양한 기종(器種)이 다량 확인되었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백제의 영역에 포함되었던 충청·전라 지역의 경우는 주로 높은 신분의 무덤에서 확인되는 경우가 많고 그 수량과 기종도 매우 한정적이다. 또한 흥미롭게도 이를 어설프게나마 모방한 토기들도 동일 유적에서 확인되기도 한다. 중앙산 흑색마연토기가 출토된 충청권 대표유적으로는 천안 용원리· 화성리, 서산 부장리·기지리가 있으며 모두 무덤에서 부장품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물품은 받은 사람의 위엄을 상징하는 위세품(威勢品)으로 왕과 같은 권력의 핵심 인물이 내려준 사여품(賜與品)일 가능성이 높아 당시 그 피장자의 권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최근 청주 오송지역에서는 원삼국~삼국시대에 해당하는 700기 이상의 대규모 토광묘가 조사되었는데, 이곳에서도 총10점 이상의 흑색마연토기가 출토되었다. 그러나 이 중 중앙산 흑색마연토기는 단 1점으로 이는 충북지역에서의 첫 사례로 주목된다. 해당 유물은 형태적으로 중앙산 토기와 같으며, 두께도 얇아 가볍고, 외면에는 나뭇가지문양과 점열문(點列文)으로 장식되어 있다. 다른 흑색마연토기들은 중앙의 것과 기형적으로도 다르고 혹은 이를 모방하려한 듯 어깨부분에 문양도 장식하고 검은 광택을 의도 했으나 기술적으로 조잡함을 보인다.



과거 국립문화재연구소는 3년간('13~'15년)의 연구를 통해 그간 베일에 싸여있던 백제의 하이테크라 볼 수 있는 흑색마연토기 제작기술을 복원한바 있다. 자연과학분석을 통해 흑색마연토기의 태토분석을 하고, 이와 비슷한 성분의 흙을 채취하여 토기를 빚고, 백제 유적에서 확인된 토기 가마의 구조를 본떠 가마의 제작부터 토기 소성까지 전 과정을 복원해 보았다. 그 결과 흑색마연토기의 제작기술은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었다.

①입자가 고운 흙을 사용해 토기를 빚고, ②어느 정도 건조된 토기를 표면이 매끄러운 강돌, 견과류 등으로 마연하여 광택을 내고, ③이를 700℃정도의 온도까지 서서히 굽다 마지막 단계에 연료를 가득 넣고 가마를 폐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광택이 나는 표면에 불완전 연소로 인해 발생한 그을음(탄소입자)이 토기표면에 달라붙는 것이다. 이 외에 가마의 용적이 작고, 연료가 타는 아궁이와 일정거리를 두고 재여진 토기들이 좋은 흑색광택을 내는 것으로 확인 되었다.

이는 현대 도예에서도 확인되는 '꺼먹이기법' 혹은 '라쿠기법'으로 불리는 기술로 뜨겁게 달궈진 기물을 톱밥, 왕겨, 짚 등의 유기물로 덮어 그을음을 입히는 방법과 유사하다. 지금에 와서는 그다지 세련되지도 첨단의 기술이 아닐지 모르지만 과거에는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중앙의 독자적인 기술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하이테크도 그러하듯 과거에도 기술에 유행과 쇠퇴는 있었다. 흑색마연토기는 수도가 서울에 있었던 한성백제기(B.C.18~A.D.475)까지만 향유되고 지방으로 사여되다가 웅진 천도 후에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위세품들이 등장했을 것이다. 이렇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행에 따라 가치가 변하고 잊혀진 물건일지라도 먼 미래에 나타나 그 당시의 생생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이 문화재의 매력이 아닐까!

남상원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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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청주 오송 유적(중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