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없는 사람은 삶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기억을 파괴하는 사람은 삶을 파괴하는 사람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 기억이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조작되기도 하고 제거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제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지만, 그 조작과 제거도 드디어는 기억의 중요성을 거꾸로 말해주는 행위가 된다. 실상을 기억하지 못할 때 조작의 가능성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이 그렇듯이, 그래서 사람들은 기억의 물리적 증거들을 끝내 가지고 있으려 하는 것이다.

기념비적 기억뿐만 아니라 추억의 장소도 그렇다. 장소 없는 기억도 없고 기억이 부착되지 않은 장소도 없다. 모든 기억은 구체적인 물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어느 날의 나무 아래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서류와 컴퓨터로 어지러운 사무실의 책상에서 크고 작은 싸움을 저지르고 있으며, 사람이 오지 않는 마당의 외로운 나무의자에 앉아 오래된 마음을 꺼내놓고 울어보기도 한다. 그 장소가 없는 사람은 장소가 만들어낸 달콤하거나 독한 기억이 없는 사람이며, 그래서 삶의 향기가 없는 사람이다.

대전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에게 기억으로만 남은 장소가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사라졌기 때문에 더 그리워지곤 하는 건물이 `대전시민회관-연정국악원`이다. 그 옛 시민회관의 자리를, 지금은 유리 외벽으로 마감되어 빛나고 높아진, `예술가의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물이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 그 건물은 아득하여 닿을 길이 없는 저 무수한 삶의 시간이 무참히 파괴된 장소의 이미지일 뿐이다. 옛것을 주로 기억할 뿐 날쌔게 새로운 유행으로 옮겨가는 일에는 아주 덜 떨어진 내 탓이기도 할 테다. 옛 대전시민회관 시절의 그곳 건물 옆마당 벤치에서 나는 함께 문학제를 할 친구를 기다리기도 했고, 시화전을 하는 선배에게 줄 꽃 한송이를 든 채 위태롭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앉아 있기도 했다. 그 시민회관 건물이 예술가들의 반대를 무시한 채 부서지고 모든 기억도 파괴된 후 새건물이 들어섰을 때 나는 그곳에서 공연되고 전시될 예술작품들을 아예 바라보지 않기로 작정했었다. 그곳은 이제 나에게 나무도 벤치도 꽃한송이도 모두 사라져버린 채 파괴만 있는 장소였다. 그곳은 대전 예술의 많은 기억이 파괴된 곳이었고, 지금도 내게는 그렇다. 그곳이 대전 예술의 중심지라서 나는 더 아프다.

예술이 새로운 심미적 기준들을 우리 삶의 한가운데에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데 나는 동의한다. 시는 오직 단 한편의 새로운 시로서만 창조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미 누군가에게 표현되어버린 언어와 형식은 온 삶을 집어넣어 만들어지는 예술의 진정성을 갖지 못한다. 그렇지만, 모든 예술은 오래된 삶을 살리기 위해 새로움을 찾는 것이지 삶을 파괴하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다. 이태리 미래파가 예술의 새로운 형식을 도모했다가 파시즘에 연루되는 순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던 이유도 그와 같다.

대전에 시민들의 삶을 만들어주고 지속시키는 역사적 공간이 거의 없고, 그나마도 파괴되기 일쑤라는 말은 아주 빈번히 들려온다. 이 파괴행위도 장기적으로는 시민의 무기력을 이용하여 패배주의와 무관심을 유포하고 지배하려는 금권과 정권의 의도와 관련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지금 목포의 구도심 보존을 두고 이루어지는 정쟁이라도 대전에 일어났으면 좋겠다. 정쟁이나 정책은 정치인이나 공무원들끼리 하도록 `버려두고`, 그 정쟁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장소에 눈을 뜰 수 있다면, 우리는 보존되고 공유될 기억의 공간에서 우리 스스로를 보다 따뜻하고 넓은 삶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테니까. 일제 강점기에 세워져 대전시청사로 사용되었던, 어쩌면 헐려버릴지도 모르는 어떤 건물이 지금 내게는 그런 장소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박수연 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