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팔도유람] 겨울에 핀 꽃의 위로 시들었던 삶이 다시 피네

2019-01-23기사 편집 2019-01-23 14: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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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포수목원

첨부사진1눈 내린 천리포수목원과 초가집 모양의 민병갈기념관 [사진=천리포수목원 제공]

채움의 삶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비워서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고 한다면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충남 태안반도의 북쪽에 위치한 천리포수목원은 풍성한 잎사귀와 화려한 꽃이 떨어진 지금이 나무 본연의 모습을 즐기기에 가장 적합하다.

천리포수목원의 설립자인 고 민병갈(Carl Ferris Miller, 1921-2002)은 독일계 미국인으로 1945년 미군 선발대 정보장교로 한국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풍물에 반해 1979년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고 민병갈 원장은 귀화전인 1970년부터 태안 천리포해변의 헐벗은 모래언덕에 어린 나무와 씨앗을 심으며 평생을 바쳤고, 그 결과가 바로 천리포수목원이다.

고 민병갈 원장은 비록 사람이 만드는 공간이지만 자연에 사람의 손길을 최대한 억제한 곳, 풀과 나무들이 자연의 섭리대로 자랄 수 있는 곳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숨결이 깃든 천리포수목원에는 전지가위로 반듯하게 모양을 낸 나무, 온갖 형상을 연출하는 분재가 없다. 그가 생을 마감한 이후에도 그의 철학과 뜻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어 천리포수목원의 겨울은 우리나라 식물원, 수목원에서는 보기 드물게 자연 그대로의 정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천리포수목원의 겨울은 꽃과 잎으로 가려온 나무들의 수려한 질감과 볼륨이 도드라지는 시기이다. 여름에 화려한 헛꽃을 피워 낸 수국은 꽃 형체 그대로 정원에 남아 드라이플라워가 된다.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호랑가시나무는 각양각색의 잎과 열매가 대조를 이룬다. 혹여 흰 눈이라도 내려앉으면 선명한 색채가 더욱 빛을 발해 눈부신 광경을 펼쳐놓는다. 정원 곳곳에서 알록달록 붉은색과 노란색 줄기를 뽐내는 말채나무들은 언제 이곳에 있었는지 의문을 들게 할 정도로 돌연 겨울정원의 히든카드가 되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가 보기엔 갑작스럽지만 식물들은 오래전부터 준비한 결과이니, 새로운 모습을 통해 나무들의 생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것 역시 겨울 정원의 묘미이다. 풀숲에 가려져 웅크리고 있던 낙우송의 기근(지상으로 솟아 오른 뿌리)을 제대로 감상하기에도 겨울만한 계절이 없다. 나무들이 이토록 비워내고 난 자리에서 우리는 다소 생경한 나무 본연의 모습을 보며 비움의 미학을 배운다.

비어있는 정원을 슬며시 채워주는, 꽃보다 아름다운 겨울 열매는 새들에게 소중한 먹이가 되어 다양한 새들을 수목원으로 불러 모은다. 많은 탐방객들이 스피커를 통해 새소리가 전해진다고 착각할 정도이니 그 위력이 대단하다. 육중한 잎과 눈부신 꽃들이 만발한 계절에는 귀에 들어오지 않던 새소리가 비워진 정원에 맑고 깨끗하게 울려 퍼진다. 수목원이 서해바다와 접하고 있어 해송 너머로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새소리가 쉬어가는 틈을 메꾸어 나무의 정원을 소리의 정원으로 탈바꿈 시킨다.

천리포수목원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식물 종을 보유한 곳이다. 그러다 보니 한겨울에도 노지에서 월동이 가능한 겨울식물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지난 겨울부터 꽃을 피운 히에말리스동백 '샹소네트'와 다를레이엔시스 에리카 '아서 존슨', 낙지빨판 모양으로 긴 꽃줄기에 황금색 꽃을 매단 메디아뿔남천 '라운드우드', 상서로운 향기를 내뿜는 납매 그리고 한 겨울 태양빛을 가득 담은 복수초가 겨울 꽃의 시작을 알린다. 이후에는 향기가 천리까지 전해진다는 서향과 풍년화, 설강화, 매화에 이르기까지 수목원 곳곳에서 긴 겨울을 위로해 줄, 보석같은 꽃을 피운 식물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단, 겨울 정원에서 이러한 꽃을 찾기 위해서는 눈과 코, 귀를 열고 자연을 향해 좀 더 몸을 낮춰 가까이 살펴보아야 한다.

겨울 정원의 모든 것을 더 가까이, 편안하게 즐기고 싶다면 천리포수목원의 '가든스테이' 이용을 추천한다. 가든스테이는 한옥, 초가집과 같은 독채타입의 가든하우스와 유스호스텔 타입의 에코힐링센터가 있다. 가든하우스를 이용할 경우 수목원 개장 전, 폐장 이후에 고즈넉한 수목원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또, 천리포수목원의 랜드마크인 초가집 모양의 민병갈 기념관 역시 필수 방문코스이다. 건물 1층은 연간 기획전시가 열리는 밀러가든 갤러리이고, 2층은 민병갈 설립자의 스토리와 유물을 전시하여 천리포수목원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민병갈 기념관이다.

천리포수목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하며(연중무휴), 입장료는 성인 6000원이다. 운영시간과 입장료는 계절별로 상이하니 천리포수목원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또한 공익재단으로 운영되고 있는 천리포수목원은 국내 수목원 중 유일한 기획재정부의 지정기부금 대상기관이다. 따라서 천리포수목원 후원회원에 가입하거나 일시적으로 후원한 후원금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대전일보=정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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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눈 덮인 낙우송의 기근 [사진=천리포수목원 제공]

첨부사진3매실나무 [사진=천리포수목원 제공]

첨부사진4눈 쌓인 납매 [사진=천리포수목원 제공]

첨부사진5눈 쌓인 애기동백나무와 가든하우스 초가집(다정큼나무집) [사진=천리포수목원 제공]

첨부사진6다를레이엔시스 에리카 '아서 존슨' [사진=천리포수목원 제공]

첨부사진7'토르토우스 드래곤' 사진=천리포수목원 제공

첨부사진8큰연못과 눈 쌓인 오구나무 [사진=천리포수목원 제공]

첨부사진9큰연못과 흰뺨검둥오리 가족들 [사진=천리포수목원 제공]

첨부사진10항공사진-천리포수목원과 서해바다 [사진=천리포수목원 제공]

첨부사진11항공사진-천리포수목원 방향으로 밀려드는 파도 [사진=천리포수목원 제공]

첨부사진12호랑가시나무 종류 [사진=천리포수목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