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집-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장석주 지음/문학동네/148쪽/1만 원

시집은 1월 1일 인쇄돼 시인의 음력 생일과 같은 날인 1월 8일날 초판이 발행됐다. 책 11쪽에는 `아내 박연준에게`라는 단어가 책 상단부 가운데 정렬돼있다.

문장노동자, 장석주 시인의 신작인 문학동네시인선 116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가 새해벽두 출간됐다. 시집의 얼굴인 제목이 16자에 달하니 제법 길다.

다시금 헤아려보니 문학동네에서 지금까지 펴낸 116개의 시집 중 가장 긴 제목이다. 논산 출신의 시인이 책 날개와 5쪽, 두 번에 걸쳐 남긴 시인의 말에는 `이번 시집은 작다`고 했다.

작아지려고 탕약처럼 뭉근한 불로 오래 졸였다고도 했다. 여기에 `작음은 이번 시집에서 내세울 단 하나의 자랑거리`라고 덧붙였다.

가장 긴 제목을 가진 작은 시집이 되겠다.

시는 사랑을 담았다. 그리고 죽음과 궤를 같이한다.

`그가 어젯밤 죽었다`, `오늘 죽은 뒤 내일을 사는 우리`, `한낮의 수탉이 죽고 맨드라미가 시들고`, 그리고 별과 달이 후두두 떨어졌다.

영원한 삶은 없기에 영원한 사랑도 없다.

시인이 단 3부 제목이 `나는 살아도 살았다고 말 못 한다`고 붙인 것을 보면 사랑과 죽음의 인과를 느낄 수 있다.

시는 1부를 시작해 4부에서 끝난다.

4부는 1편의 시극(詩劇) `손님 -쌍절금(雙節琴)애사`로 매듭지어진다.

시집은 읽는 이를 위해 곳곳에 쉼표를 마련해 뒀다.

2쪽과 4쪽 그리고 10쪽, 12쪽이 빈 채 독자가 시를 읽기 전에 한 박자 쉬고 갈 수 있도록 했다.

총 4부로 나뉜 시집에서 1부와 2부 사이에는 쉼표인 빈쪽이 없는 반면 2부에서 3부로 넘어가는 골목인 70쪽은 비워지고, 다시 3부와 4부는 쉼 없이 이어진다.

그러다 4부의 중간 즈음인 113쪽에 이르러 돌연 (암전.)된다.

등단한지 40년이 된, 이순을 넘긴 시인은 글자를 새겨낸 시뿐만 아니라 빈쪽에서도 완급을 노련하게 다룬다.

펴낸 책 속에 시를 훑고 있노라면 시인의 설계된 박자에 손과 눈이 움직인다.

해설을 맡은 오민석 평론가는 "그리하여 장석주에게 세계는 유령이다. 정처가 없고 형상이 없으며 그 자체가 모호성이다. 보이는 모든 것들은 영원하지 않으며, 우연의 모순 속에 있다"며 "장석주의 시는 영원의 가장자리로 지속적으로 다가가는 행성 같은 것이다. 시의 언어는 실재와 접촉하는 순간 불탄다"고 기술했다.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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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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