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남 교수
김기남 교수
몇 해 전 TV에서 순박한 시골 노부부들이 스피드게임을 했다. 한 할아버지가 `천생연분`을 설명하며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4글자!"했더니 할머니께서 바로 외쳤다. "평생웬수!" 결혼. 인연인지 악연일지 살아 봐야지만 알 수 있으니 일생일대의 대모험이다. 오죽했으면 `바다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결혼은 위험하고 비장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더군다나 얼굴 한 번 못 보고 결혼하면서 이혼도 불가했던 조선시대, `시댁 귀신이 되라`며 딸을 시집보내는 친정어머니는 얼마나 불안하고 걱정이 컸을까. 그런 조심스럽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스레 준비했던 것이 바로 혼례음식이었다. 그래서 전통 혼례음식은 하나하나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잔치국수` 역시 그 의미 때문에 오늘날까지 결혼식의 대표 음식으로 꼽힌다. 요즘이야 `잔치국수`하면 삶은 국수에 멸치다시 육수를 붓고 간단한 고명을 올린 서민음식이지만, 밀가루가 귀했던 당시에는 `잔칫날`만 맛보던 귀한 음식이었다. 국수의 긴 면발은 신랑 신부의 인연이 오랫동안 길이길이 이어지라는 것이고, 돌돌 말아 타래를 틀어 놓는 것은 신랑 신부가 서로 돌돌 엉겨 하나가 되라는 기원의 뜻이 담겨 있다. 중요한 행사인 만큼 전통 혼례 절차와 형식은 꽤 복잡했다. 신랑이 함을 가지고 신부 집에 가는 납폐일에는 찹쌀과 팥을 두 켜로 쌓아 만든 봉치떡 시루 위에 함을 얹었는데, 신랑 신부 두 사람이 찰떡처럼 착 달라붙어 살라는 것이며, 팥의 붉은 기운은 부부에게 들어오는 액운을 막고 활기 넘치기를 기원하는 것이라 한다. 흔히 전통혼례로 떠올리는 신부 집 마당에서 이뤄지는 초례의 음식은 지역마다 달랐지만 대추와 밤은 빠지지 않았다. 대추는 바람에도 씨눈이 떨어지지 않고 모두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데 자손이 풍성하고 대대손손 천수를 누리라는 의미로 혼례상에 올렸다. 밤은 조상을 상징해 신랑신부 둘만이 아닌 두 집안의 화합을 뜻했고 밤나무는 옮겨 심으면 죽는다고 해 부부의 절개를 의미했다. `축첩제도`가 존재했지만 이런 성스러운 혼례식은 오로지 한 명의 `처`랑만 할 수 있었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혼례에는 곶감 역시 많이 사용되었는데 씨를 심어 열리는 고욤나무에 감나무 새순을 접지해야 비로소 감이 열린다. 이 역시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실을 맺으라는 의미이다. 이후 신랑 집에서 이뤄지는 폐백에도 역시 밤과 대추가 들어가는데,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밤과 대추를 던져 줬다. 밤은 딸, 대추는 씨가 있어 아들이란다. 며느리가 시어머니께 올리는 엿도 참 재미있다.

결혼은 판단력이 부족해 하는 것이고, 이혼은 이해력이 부족해서, 재혼은 기억력이 부족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고심하고 따져봐도 인간의 판단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으니 정성으로라도 채워 넣고 하늘의 힘을 빌어보려는 엄숙한 소망을 혼례음식에 담으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허례허식을 빼고 두 사람의 결합에 의미를 두는 `스몰웨딩`이 열풍이고, 음식 대신 답례품을 준비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는 요즈음 사라져 가는 전통 혼례 음식이 안타까운 것도 이 때문이다.

김기남 대전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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