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이 아름답게 피는 계절이다. 찬바람 불고 흰 눈 쌓인 겨울에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며 피어나는 동백꽃은 자연의 예술을 보는 것처럼 신비롭다. 특히 제주도, 부산, 통영, 여수 등 바닷가에 피어난 동백꽃은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동백꽃은 벌과 나비가 없는 한 겨울에 피어나는데 신기하게도 꽃가루는 동박새가 옮겨준다. 어른 손가락 하나만한 작은 몸집의 동박새가 열심히 날아다니며 벌과 나비 대신 꽃가루를 옮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동백나무와 동박새는 공생관계다. 동백나무는 동박새에게 꿀을 주고 동박새는 꽃가루를 옮기며 열매를 맺게 해준다.

동박새는 한 겨울에 먹이를 구하기가 어렵다. 눈이 많이 쌓이면 먹이를 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겨울에 피는 동백꽃이 소중한 먹이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동백꽃과 동박새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고마운 존재다. 내가 동백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꽃도 아름답지만 동백꽃과 동박새의 아름다운 공생관계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공생이란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공생이 상생의 기반이다. 둘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면 둘 뿐만 아니라 주변 생태계가 모두 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동백나무와 동박새가 공생하면 주변 숲도 건강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인류가 지금까지 번영을 해온 두 개의 거대한 동력은 협동과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협동을 통해 자연재해를 이겨내고 맹수들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다. 또한 협동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이룩해 왔다. 한편 경쟁을 통해서도 혁신과 성장을 이룩해왔다. 경쟁을 해서 더 큰 성과를 내거나 이긴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하면 이것이 동기가 되어 더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해서는 협동과 경쟁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시장에 까지 개입하고 경쟁대신 배급을 하며 버텨오던 공산주의 국가들이 몰락한 이후 자유경쟁이 기술혁신과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신념이 확산되었다. 그 결과 전세계는 점차 무한경쟁시대로 빠져들게 되었다. 국가도 기업도 심지어는 비영리단체조차도 경쟁체제에 돌입하였고 마침내는 무한경쟁이라는 극단적 경쟁환경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경쟁은 순기능이 있지만 무한경쟁은 반드시 독성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무한경쟁은 팀웍을 해치고 인성을 파괴하며 심신을 지치게 한다. 사회적으로는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분노와 증오심을 유발한다. 학자들은 이를 `무한경쟁의 저주`라고 부르고 있다. 수십년간 진행된 무한경쟁의 후유증을 겪으면서 전 세계는 이제 신인본주의와 건강한 생태계를 지향하는 사조가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협동, 상생, 공생, 협업, 동반성장이 새로운 살 길이다. 경영학의 최고봉 소리를 듣고 있는 하바드 비지니스 스쿨 마이클 포터 교수는 그동안 경쟁전략 이론으로 명성을 떨쳐왔으나 이제는 협업을 통한 건강한 생태계 조성이 지속가능 경영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매년 겨울 제주도를 찾아간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섬이다. 이번 주말에 제주도 여행을 잡아놓고 있다.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동백마을이다. 이 맘 때쯤에는 동백꽃을 보러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붉게 핀 동백꽃을 보면서 각자 느끼는 감동이 있을 것이다. 동백꽃 꽃말인 `진실한 사랑`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수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소설가 뒤마 피스의 `춘희`가 떠오르는 사람,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동백마을에 가면 먼저 동박새를 만나고 싶다. 등은 녹색이고 배는 흰색인 동박새는 특히 눈 주위가 아름답다. 흰색의 동그란 테가 눈 주위를 선명하게 감싸고 있는데 마치 지혜의 안경을 쓴 것처럼 보인다. 무한경쟁에 지친 세상 사람들에게 함께 사는 지혜를 일깨워 주는 동백꽃과 동박새를 보는 것은 새해 벽두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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