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은 너무나도 유명한 시인이다. `님은 갔습니다`. 학창시절 그의 시 `님의 침묵`의 한 구절을 읖조려 보지 않은 이가 별로 없을 정도다. 사실 그의 생애에서 시인으로서 삶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기 전인 1879년 태어났다. 6세 때부터 향리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18세 즈음해 고향을 떠나 불가에 의탁했고 1905년 정식으로 출가해 법명 `용운`을 받았다. 큰 바다라는 뜻의 만해(萬海, 卍海)는 법호다. 1910년 국권을 빼앗기자 중국 독립군 군관학교를 방문하는 등 수년간 북방을 떠돌다 귀국해 불교계 혁신에 힘쏟았다. 1919년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리고 체포됐다. 3년간의 옥살이 끝에 출소 후에는 민족의식 계몽 활동을 했고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했다.

`박명`과 `흑풍`이라는 장편을 써내며 소설가로서 면모도 보였지만 무엇보다도 만해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항일 독립운동가`다. 일제의 교묘하고 끈질긴 협박과 회유 속에서 한때 애국지사를 자처했던 지식인, 문화계 인사, 교육자들이 숱하게 변절해 갔지만 꿋꿋이 지조를 지킨 인물이다. 시에서는 여린 듯한 어조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담대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이광수 등이 친일로 돌아서자 홍명희가 찾아와 "이런 개같은 놈들이 있냐"고 한용운에게 물었고 "개는 주인을 배신하지 않소. 그들은 조국을 배신했으니 개만도 못한 놈들이오"라고 응수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바랐던 그이지만 아쉽게도 광복을 1년여 앞둔 1944년 눈을 감고 만다.

충남 홍성에는 그의 생가가 있다. 지난 주말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곳을 방문했다. 이 총리는 지난 12일 손병희 선생 묘소를 찾아 참배하는 등 2주 연속 독립운동가들과 관련된 곳을 찾고 있다. 총리쯤 되면 분 단위로 일정표가 짜여진다. 일거수 일투족이 메시지다. 현 정부가 3·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침략국인 일본은 바로 옆나라에서 대대적인 항일 기념행사가 열린다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리 없다. 자국 초계기 저공비행과 레이더 논란에 꾸준히 불을 지펴대는 모양새를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만해가 살아 있었다면 속 시원하게 한 마디 하지 않았을까.

이용민 지방부 차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