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니즘

김찬호 지음/문학과지성사/250쪽/1만3000원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안부 인사에 인류사의 위인들이 어떻게 답할지 기발하게 대입시켜 화제를 모았다.

단테 `천국에 온 기분입니다`, 비발디 `계절에 따라 다르지요`, 칸트 `비판적인 질문이군요`, 카프카는 `벌레가 된 기분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맞혀보세요.`

난해하고 골치 아프다고 여겨지기 쉬운 철학과 사상이 유머와 만나면 심오한 미덕이 되고, 경쾌한 시대정신이 되기도 한다.

세상살이가 팍팍할 수록 유머는 반짝이고 유러러스한 사람들이 인기를 끈다. 리더의 자질로 유머 감각이 손꼽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많은 사람들이 유머 감각을 선망한다.

그렇다면 좋은 유머 감각은 무엇일까.

문화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감찬호는 신간 `유머니즘`에서 유머감각은 웃음거리를 감지하고,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또 유머감각이 있으려면 이성적인 추론이나 사유를 뛰어넘어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이 요구되며, 상대방에 대한 호의와 배려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유머 감각을 이루는 여섯개의 기둥을 제시한다.

첫번째는 `포착`이다. 저자는 탁월한 유머는 남다른 시선에서 발동한다고 보고 있다. `결혼하는 여성은 많은 남성의 관심을 한 남성의 무관심과 교환하는 것이다`라는 미국의 칼럼니스트 헤렌 로우랜드의 말처럼 가치나 관행에 딴지를 걸면서 그 본질을 명쾌하게 드러낸다. 두번째는 `표현`이다. 유머 감각을 키우는 초보적인 방법은 웃기는 이야기를 외워서 들려주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하기 위해 말투나, 억양, 표정 의미를 능숙하게 변주할 수 있는 재료가 넉넉해야 한다는 것. 하상욱 시인이 쓴 `모스키토` 시가 대표적이다. `원하는 건 가져가/ 꿈꾸는건 방해마.` 모기를 표현하는 그의 방식이 사뭇 만화적이면서도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세번째는 `연기`다. 유머의 상당 부분이 연극적인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순식간에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 잠깐 다른 존재가 돼 역할을 수행할때 언어의 놀라운 힘을 실감하게 된다. 네번째는 `동심`이다. 아이들은 웃기려는 의도가 없는데도 천진난만함에 다른 사람들을 웃음에 빠뜨린다. 누군가 "아줌마, 형이랑 나랑 둘 중에 누가 동생이게요?"라고 묻는다면 안 웃고 넘어갈 수 있을까. 다섯번째는 `넉살`이다. 너무 반듯하기만 한 사람에게서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정해진 규칙이나 기존의 관행, 익숙한 패턴을 창의적으로 깨부술 때 자유로운 마음이 활짝 열린다. 특히 엉뚱한 짓은 재미를 추구하는 행위이면서 생태계에서 적응력을 높여주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마지막은 `공감`이다. 유머감각은 남을 웃기는 능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농담에 흔쾌히 반응하고 크게 웃는 것도 유머 감각의 중요한 속성이다. 여기에 상대방을 주인공으로 띄우면서 기꺼이 마음의 갈채를 보낼 수 있는 여유, 함께 있는 사람들 사이에 기쁨의 에너지가 흐를 수 있도록 가슴을 열어놓는 태도도 포함될 수 있다.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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