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영 작가
김근영 작가
모름지기 예술이란 세끼 밥 먹고 할 짓이 못 돼야 하는데 요즘은 밥 세끼 먹는 것이 화두가 돼 버린 듯하다.

작가를 탓할 일도 소비우선주의에 살고 있는 대중을 탓할 문제도 아니다. 일반인들의 시선에서 보면 작가라 칭하는 인간들은 분명 독특한 부류의 특성을 지닌다.

문제는 그들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며 여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준비해야 되고 가족을 부양해야 된다. 밤샘 작업으로 부스스한 얼굴로 남들 출근시간에 일어나 낮술이라도 한잔 기울이려면 돈이란 것이 필요하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있는 듯하다. 더부룩한 머리에 늘 술에 취해 있으며 뭔가 괴팍한 눈빛을 지니고 또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남들과는 다를 거라는 이미지의 고착이 그것이다.

고약한 일이다.

모든 미술가들은 반 고흐의 고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인가? 물론 이 문제는 이분법논리로 논할 수 없고 선택을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미국의 팝 아티스트 앤디워홀을 자신에게 진정한 예술은 부의 창출이라 말한 바 있다.

작가들에게 핑계거리가 생겼다. 속으로 꿍하고 있던 돈 문제를 미술사조에 떡하니 써놨으니…. 미술가들은 외모는 반 고흐처럼 속은 앤디워홀로 살기 시작했다.

이젠 그것마저도 귀찮은지 현대 미술이라는 이름하에 모든 것이 용납되기 시작했다. 반 고흐의 삶은 작가 스스로도 영화에서나 보는 장면이 됐다.

작품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길을 대중의 뜻에 응해 작품에 변화를 주는 것과 부양가족에 대한 막대한 책임감이 있다면 일말의 이해라도 해보겠는데 문제는 그들의 뒤를 따르는 신진작가들의 방향이다.

작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택을 해야 되는 일이 있는데 내 작품을 대중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사용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성찰의 수단으로 사용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이제 막 발아하기 시작한 새싹이 과일 경매시장에 쭈뼛 거리는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 비바람도 겪고 된서리도 맞아가면서 먼저 훌륭한 열매를 맺어야 되지 않겠는가? 걱정마라. 필자도 30여년 그림판에 있으면서 아직 굶어 죽었다는 작가는 보지 못했다.

김근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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