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지막 날 오후, 고 임세원 서울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외래진료실에서 진료 중 정신질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 전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임 교수는 사건 당시 범인에게 쫓기면서도 간호사 등 다른 의료진이 대피했는지 확인하려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드러나 주위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이번 임 교수 사건을 계기로 병원 내에서 의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높아지고 있으며, 의학계와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의견을 반영해 의료법을 일부 개정하는 내용의 소위 임세원법의 제정을 논의하고 있다.

국회는 2017년 12월 응급실 폭행을 가중 처벌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응급실`이라는 제한된 공간만 법의 보호가 강해졌지 병원 나머지 공간은 전과 마찬가지이기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응급실뿐만 아니라 병원 전체 내에서 폭행이 발생할 시에도 형사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우선 포함돼야 할 것이다.

또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의료진이 빠져나올 수 있는 뒷문을 두거나 비상벨을 설치하고 전담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내용도 고려돼야 한다. 아울러 동네 의원의 경우에는 뒷문, 비상벨, 안전요원 모두 전무한 것이 현실로, 경찰과의 핫라인 설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원장과 간호사 1-2명만이 근무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대피문 설치와 안전요원 고용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은행이나 편의점과 같이 비상벨을 설치, 벨을 누르는 경우 인근 경찰서나 지구대의 경찰이 출동하도록 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의사의 안전 보장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측면이 바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효율적인 대책과 관리로, 이러한 내용을 반영한 정신건강복지법의 일부개정도 임세원법에 포함돼야 한다.

20년간 시행된 정신보건법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의해 법적 효력을 상실하고, 2017년 5월부터 정신건강복지법이 새로이 시행되면서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절차가 대폭 강화됐지만, 정신질환자가 원치 않을 경우 입원 요건이 까다로운 탓에 의료기관에서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을 수 없고,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이 병원 밖에 방치되고 있어 사회에 불필요한 부담을 안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감안해 우선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정신질환자 중 퇴원 후 치료가 중단될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 본인의 동의없이 퇴원 사실을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전달해,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고려돼야 한다.

현재는 환자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가 불가능해 치료가 임의로 중단되거나, 지역사회 복지서비스 지원 등이 이루어지지 못해 증상이 악화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임 교수를 살해한 박 모씨도 극심한 조울증을 앓고 있었지만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돼 있지 않았고 1년 동안 외래진료도 받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다음으로 `외래치료 명령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고려돼야 한다. `외래치료 명령제`는 의사가 자신이 진료한 정신질환자 가운데 과거 이력을 고려해 치료를 중단하면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보호의무자의 동의를 얻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외래치료 명령을 청구하는 제도로, 그 동안 환자 인권 문제, 보호의무자의 거부 등으로 인해 사실상 유명무실해 졌다. 의사가 외래치료 명령을 청구할 때 보호의무자의 동의 절차를 삭제하고, 지방자치단체장 직권에 의한 `외래치료 명령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울증, 불안장애 전문가로 자살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천착해왔던 임 교수가 자신의 SNS에 남긴 마지막 글은 "힘겹다. 하지만 이게 나의 일이다"라고 한다.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안전한 진료환경으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의료법, 정신건강복지법을 일부 개정하는 내용의 임세원법이 조속히 제정됐으면 한다.

`윤창호법`, `김용균법` 등 국민이 희생되고 나서야 입법을 하는 이른바 `사후(死後) 입법`이 우리나라 국회의 현주소인바, 임세원법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러한 악습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성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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