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한국당 겉으론 찬성 속으론 외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활동 시한을 올 6월 말까지로 연장함으로써 선거제도 개혁 관련 논의가 진행될 시간은 다소 늘어나게 됐다. 2020년 총선을 1년 남짓 앞둔 상황이기에 연초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는 뜨거울 전망이다. 여야 모두 현행 선거제도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공감하고 있고 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적 목소리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여야는 지난해 말 관련 법안 처리를 약속했으나 무위에 그친 바 있다. 5당 합의 아래 정개특위가 논의를 거듭했음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와 그에 따른 의원 정수 조정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이미 자유한국당이 `합의가 아닌 검토 수준이었다`며 발을 뺄 때부터 물 건너간 것이란 시각이 우세했다. 가까스로 지난 달 27일 정개특위 활동 시한을 늘렸으나 각 당의 입장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사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정당 득표율에 정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하는 이 제도는 사표를 방지하고 표의 등가성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효과적이다. 승자독식 구도를 방지하는 한편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용이하게 하여 국회를 다양한 정치세력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꾸준히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의원 정수가 늘어날 수 있고 비례대표 순번 부여 과정의 공정성 확보 등 논란거리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부정적 여론이 존재한다.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면 거부감은 더 커진다. 국회의 비효율성이 도마 위에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이를 용인할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일각에서는 의원 수가 늘어나는 만큼 세비를 감액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을 제시하지만 과연 국회가 제 살을 깎으려는 의지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대안으로 지역구를 축소하면 되지 않겠냐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세비를 깎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다. 여전히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하는 정당구조가 온존한데다 지역 대표성에 익숙한 정치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일련의 선거제도 개혁을 어렵게 하는 것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같은 거대 양당의 태도다. 이들은 양당체제란 기득권에 편승하여 수십 년간 우리 정치를 주물러 왔다. 이런 두 당이 정치구도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파괴력을 지닌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같은 `위험`한 제도를 도입하는데 앞장설 리는 만무하다.

현실적으로 민주당으로서는 연일 지지도가 떨어지는 판에 보다 진보적인 소수 정당에게 의석 확보가 용이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비슷한 정체성을 지닌 진보 성향의 표가 잠식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는 한국당 역시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서 점차 등을 돌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범보수통합을 꾀해 보수의 부활을 노리는 상황에서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바른미래당 등에게 활동공간을 넓혀줄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로 미뤄 두 거대 정당이 과감하게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 한 선거제도 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겉으로 보면 이들 두 정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외치고 있는 것 같지만 속내는 `그냥 이대로가 좋다`는 태도가 엿보인다. 평화민주당이나 정의당 등이 연일 대안을 제시하고 설득을 구하는 것과는 달리 끊임없이 시비와 논쟁으로 일관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지난해 말부터 거듭되는 공방도 따지고 보면 여론의 향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시간을 끌겠다는 두 거대 정당의 꼼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한 두 정당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김시헌 천안아산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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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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