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수의 전통문화 돋보기

어렸을 때 남자 아이들 중 구슬치기를 안 해본 사람은 없다. 딱지와 구슬을 많이 가진 아이는 아이들 중에서 항상 대장이 됐다.

구슬치기는 1936년도에 일본에서 들어온 놀이다. 일본에서는 1869년에 `라무네`라고 해 지금의 사이다와 같은 탄산음료가 등장했다. 그 속에 유리로 된 구슬을 넣어 판매하면서 1897년에는 그 구슬이 아이들의 놀이 도구로 보급돼 구슬치기 놀이가 시작됐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딱치 치기, 고무줄 놀이, 공치기 놀이가 구슬치기와 같이 공장에서 만든 근대식 놀이 기구로 인기를 끌었으며 가게에서 판매됐다. 일본에서는 이것을 `비-다마아소비`라고 해 1933년경에는 막과자가게에서 구슬이 상품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1936년에 딱지와 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놀이는 함경북도 경원과 경기도 개성에 일찍 보급돼 아이들의 놀이가 됐으며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다마아소비`라고 불렸다. 이 놀이는 중국에서도 유행하는 놀이가 됐으며 그 곳에서는 `다마먹기`라고 불렸다. 이 말은 구슬이란 뜻의 일본말 `다마`와 우리말의 `먹기`가 합성된 말이다. 1941년에 쓰여진 `조선의 향토 오락`에서 일본학자 무라야마 지존이 5년에 걸쳐 조선의 놀이를 조사했는데 이때 구슬치기가 조사돼 있었다. 구슬치기가 1936년에 대한으로 들어왔으니 일찍 자리가 잡힌 것이다. 구슬치기는 지방마다 그 놀이 방법이 다른데 대표 세 곳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남 장성은 유리 구슬을 땅위에 흩트려 놓고 멀리서 구슬을 던져 맞히는 놀이, 강원도 춘천은 구슬을 벽 등에 던진 후 튀어나와 멈춘 그 자리에서 구슬을 다시 집어서 상대방의 구슬을 치는 방식이다. 단, 보다 멀리 튀어나간 쪽이 상대방 구슬을 칠 수 있다. 함경북도 경원에서는 구슬을 튕겨서 땅에 파놓은 구멍에 들어가게 해 승패를 가리는 놀이로 돼있다.

북한에서 발행한 `재미있는 민속놀이(1994)`에서는 구슬치기를 알치기라고 소개하면서 유래를 옛날 `롱주회`라는 구슬놀이에서 유래 됐다고 했다. 롱주회는 백제시대의 놀이 `농주`를 가리키며, 고구려 고분 벽화에 서너개의 구슬을 공중에 올려 연속적으로 받아내는 그림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시대 구슬은 나무로 깎은 나무공을 의미하므로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유리구슬과는 연관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

노는 방법을 소개할 때 알 맞쳐 먹기 놀이, 구덩이에 알 그려 넣기, 알무지 허물기 놀이가 소개돼 있는 것으로 볼 때 오늘날의 구슬치기 놀이가 분명하다.

구슬치기 놀이 가운데 가장 많이 하는 놀이로 마당 한 가운데 삼각형을 그려놓고 그 안에 있는 구슬을 멀리서 던져 맞추어 먹는 `깔빼기`라는 놀이가 있다.

깔빼기 놀이는 구슬을 `까서 빼 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이 때 삼각형 안의 구슬을 빼 먹기 위해 다른 구슬보다 좀 더 크고 좋은 구슬을 하나씩 갖게 되는데 이것을 `오야다마`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으뜸구슬이라는 뜻이다.

꼴랑치기는 금산지역에서 여러 명이 구슬치기를 할 때 주로 하는 놀이다. 보통 5-6명이 함께 구슬치기를 하며 자기의 구슬을 쳐서 상대의 구슬을 따먹는다. 지역에 따라서는 세모를 그려놓고 하기 때문에 일명 `세모치기`라고도 한다. 왕구슬로 세모 안에 있는 구슬을 밖으로 쳐냈어도 자기의 왕구슬이 세모 안에 머물러 있으면 실격이 돼 오히려 구슬 하나를 세모 안에 달아 놓아야 한다. 이때 자기의 구슬이 세모 안에 들어간 것을 `꼴랑`이라 한다.

임영수 연기향토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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