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뜻 길을 나선 오늘도 풍경이 다르지 않다. 두툼한 옷을 입은 수백 명의 어른들이 마당에서 배추김치에 갓 잡은 돼지고기를 싸고 달빛을 얹어 입이 비어지게 먹고 막걸리를 부어 마셨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떡과 군밤을 받아먹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마냥 신이 난 모습이다. 방 안에서는 동네 여인들이 봄부터 산과 들에서 채취한 각종 나물들을 볶고 무치고 삶아 배추 된장국에 저녁밥을 내신다. "이런 제기랄, 누가 내 신발 신고 갔냐"며 호통을 치는 목소리조차 즐겁다.
매 해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함께 사는 세상 나눔터`에서 `산골 음악회`가 열린다. 벌써 스무 번째를 맞았다. 차복순 명창과 인간무화재인 김청만 고수의 판소리를 비롯해 스포츠 댄스, 양주별산대의 탈춤 등 다채롭고 수준 높은 공연들이 펼쳐졌다. 나눔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김갑수 대표의 오프닝 멘트가 인상적이다. 공연관람료에 막걸리값, 저녁 밥값 모두 3만원은 되지 않겠느냐고, 여기에다는 말고 꼭 그만큼을 주변 사람과 나누라고. 늘 들꽃과 대화하고 흙냄새 물씬 풍기는 사람의 목소리다.
무료 도서관과 민들레차, 연잎차, 돼지감자, 국화차를 비롯한 각종 꽃차들이 준비돼 있는 찻집, 오늘은 계피 생강차가 한 해 동안의 긴장되고 얼었던 마음들을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벌곡면 덕곡리 영주사 앞, 대전에서도 40분 거리라 마음이 멀지 않다. `나는 나의 무엇을 나눌까` 생각해 보면서 주말에 문득 가족들과 도서관 나들이를 해도 좋을 듯싶다.
이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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