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시인
이미숙 시인
몇 년 전 일이다. 세밑이라 송년, 새해 인사 주고받느라 괜히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분주하던 차에 친구에게서 음악회에 함께 가자는 전화가 왔다. 시골길이었고 밤이었고 게다가 눈까지 내려 시간이 조금 지체됐다. 도착해서 보니 마당 한가운데서 화톳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었고 서성거리며 불을 쬐는 사람들이나 흰 분칠을 하고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들, 오방색 옷의 풍물패들 모두 흥겨워 보였다. 마당귀에서는 커다란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우리를 위해 몇 분이 달려들어 접시와 젓가락을 챙겨주고 김치를 자르고 흰 목장갑을 낀 거친 손으로 뜨거운 수육을 썰어주셨다. 서로 인사말을 건네는 동안에도 접시 위에 흰 눈이 자꾸 쌓였다.

선뜻 길을 나선 오늘도 풍경이 다르지 않다. 두툼한 옷을 입은 수백 명의 어른들이 마당에서 배추김치에 갓 잡은 돼지고기를 싸고 달빛을 얹어 입이 비어지게 먹고 막걸리를 부어 마셨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떡과 군밤을 받아먹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마냥 신이 난 모습이다. 방 안에서는 동네 여인들이 봄부터 산과 들에서 채취한 각종 나물들을 볶고 무치고 삶아 배추 된장국에 저녁밥을 내신다. "이런 제기랄, 누가 내 신발 신고 갔냐"며 호통을 치는 목소리조차 즐겁다.

매 해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함께 사는 세상 나눔터`에서 `산골 음악회`가 열린다. 벌써 스무 번째를 맞았다. 차복순 명창과 인간무화재인 김청만 고수의 판소리를 비롯해 스포츠 댄스, 양주별산대의 탈춤 등 다채롭고 수준 높은 공연들이 펼쳐졌다. 나눔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김갑수 대표의 오프닝 멘트가 인상적이다. 공연관람료에 막걸리값, 저녁 밥값 모두 3만원은 되지 않겠느냐고, 여기에다는 말고 꼭 그만큼을 주변 사람과 나누라고. 늘 들꽃과 대화하고 흙냄새 물씬 풍기는 사람의 목소리다.

무료 도서관과 민들레차, 연잎차, 돼지감자, 국화차를 비롯한 각종 꽃차들이 준비돼 있는 찻집, 오늘은 계피 생강차가 한 해 동안의 긴장되고 얼었던 마음들을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벌곡면 덕곡리 영주사 앞, 대전에서도 40분 거리라 마음이 멀지 않다. `나는 나의 무엇을 나눌까` 생각해 보면서 주말에 문득 가족들과 도서관 나들이를 해도 좋을 듯싶다.

이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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