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 때쯤 되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한 각종 대학 수시전형 발표와 함께 세상을 다 얻은 기쁨과 세상을 다 잃은 듯 한 슬픔이 교차한다. 요즘 드라마 중 화제가 되는 `스카이 캐슬`을 보며 대한민국처럼 인생 최고의 목표가 대학합격이라는 것은 외국인에게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대학 이후 성공을 한다면 좋은 대학 출신이란 것이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막상 인생이 꼬일 대로 꼬인다 해도 그것을 운명과 팔자 탓으로 비교적 잘 받아들이는 유일한 민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사망 소식과 함께 그들의 장례식을 보며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모습의 장례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부시가 대통령 시절 모든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재임 당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의 치열한 전쟁을 치렀고 수많은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의 장례식 때는 한 때 나라의 책임자였던 대통령에 대해 온 국민이 최고의 존경을 표하는 모습에서, 대통령직에서 내려오면 죄인이 되는 우리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았다. 미국 시민도 아닌 필자는 그의 정치적 경쟁자였던 밥 돌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마지막 망자의 가는 길에 경외를 표하는 것을 보며 가슴 뭉클함과 함께 한편 씁쓸한 마음이 느껴졌다.

1791년 12월 5일 사망한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를 비롯해 한 때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의 인기와 명성을 떨쳤던 예술가들의 말년은 대체로 부시 대통령과는 너무나 달리 처절하고 비참하여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이다. 모차르트의 말년, 치료비가 없을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과 더 이상 궁 안의 핵심 작곡가가 아닌 이류로 잊혀져 간 채 세상을 떠났던 그에게 스승이자 동료였던 살리에리가 쓸쓸한 마지막 길을 챙겨준 의인이었던 사실은 영화 `아마데우스`에 익숙한 일반인들에겐 놀라운 사실이다. 비 오고 추운 날씨에 장례식에 참석 한 몇 명의 지인은 슬픔을 나누기 보다는 눈도장을 찍고 돌아갈 정도였었다는 사실은 씁쓸하고 마음을 무겁게 한다. 작곡가뿐 아니라, 정상의 인기를 한 몸에 안고 살았던 가수들과 연예인들이 마지막 순간은 약물 과다복용과 자살로 마감을 하는 비운의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미래의 불확실함에 대한 염려나 인간의 마음이 가장 흔들릴 때 독실한 신앙인들도 점쟁이들을 찾아가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공감이 되는 현상이다. 가장 좋은 사주인 인생의 말년에 행복 할 것이라는 사주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저마다의 간절함이 미래를 점쳐보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차르트가 전성기 시절 수많은 협주곡들을 작곡 할 수 있었던 것은 원하는대로 제공되었던 오케스트라의 편성과 규모였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작은 다름아닌 레퀴엠이다. 더욱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그가 레퀴엠을 다 끝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이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라크리모사`는 심지어 모차르트가 아닌 훗날 다른 작곡가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사실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은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반성과 새로운 다짐 그리고 희망을 꿈꾸는 달이지만, 모차르트에게는 더없이 쓸쓸하고 붙잡고 싶었던 생의 마지막 12월이었을 것이다.

조윤수 피아니스트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