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현실의 탄생

재런 러니어 지음/노승영 옮김/열린책들/536쪽/2만2000원

올해 3월 개봉했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가상현실(VR)을 소재로 삼았다. 영화는 오아시스라는 가상현실 속에 숨겨진 이스터에그를 찾는 모험을 그린 최초의 VR 블록버스터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은 이 작품은 VR을 영화 소재로 삼으며 관객들에게 VR에 대해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영화 뿐 아니다. 아이오케이컴퍼니 TN 엔터사업부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으로 국내 최초 3D VR 첩보로맨스 드라마인 `시크릿 로맨스`를 제작, 방영할 예정이다.

이처럼 가상현실(VR)은 SF 소설이나 영화에서 상투적이라 할 만큼 자주 등장하고, 참전 군인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하는 데 활용되며, 수술 연습용으로 널리 보급돼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VR로 게임을 즐기고, VR은 드라마의 소재가 돼 일상생활에서도 낯설지 않은 개념이 됐다.

가상 현실의 아버지로 불리는 재런 러니어가 신작 `가상 현실의 탄생`을 내놨다. 러니어는 1985년 VPL리서치사를 설립해 가상 현실(Virtual Reality)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고안하고 상용화한 인물.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를 이용해 네트워크로 연결된 여러 사람이 가상 세계를 탐험하는 첫 프로그램과 그런 시스템 안에서 이용자를 대표하는 최초의 `아바타`를 개발했다.

`가상 현실의 아버지`라는 별칭은 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는 전작을 통해 디지털 세상, 정보 기술 등 컴퓨터 기술의 명암과 그 미래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해 왔다. 러니어가 바라는 궁극적인 미래상은 인간이 기술에 소유되지 않고 인간이 기술을 소유하는 세상이다.

이 책의 원서 제목은 `Dawn of the New Everything`(새로운 모든 것의 새벽)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VPL 리서치사를 떠난 199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를 이 책에서 다룬다. 즉 VR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으며 상용화됐는지 보여준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VR에 관한 저자의 정의다. 저자는 VR이 지닌 의미를 52개 정의로 정리했다. 가령 `다른 장소, 다른 몸,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다른 논리의 환각을 만들어 내는 오락용 제품`처럼 고개가 끄덕여지는 게 있는 가 하면, 다른 사람의 처지에 서게 해주는 매체이자 공감을 늘리는 길` 또는 `VR=-AI(VR은 음의 AI)`처럼 수학 공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저자의 삶은 VR처럼 비현실적이다. 유대계 이민자의 자녀인 러니어는 가난하고 무법 천지인 뉴멕시코주 오지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어린시절 학교와 동네에서 괴홉힘을 당하기 일쑤였고, 자동차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 이사 가기로 한 날 완공 이틀날 방화로 의심되는 불이 나 전소된 집을 뒤로 하고 돔 형태의 집을 직접 설계해 살았다. 학비가 없어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를 팔아 대학을 다녔으며 히피처럼 떠돌다 실리콘밸리까지 가게 됐다. 한마디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이력이다.

저자가 VR을 처음 고안하고 상용화하는 과정을 담은 이 책은 일반적인 전문 분야 안내서와 달리 저자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와 VR 발전사를 번갈아 들려줘 흥미롭게 읽힌다.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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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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