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위나라에 종요라는 문장가에게는 종육과 종회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하루는 낮잠을 자고 있는데, 두 아들이 몰래 들어와 술을 훔쳐 먹고 있었다. 종요는 그것을 알아차렸지만, 계속 잠든 척을 하였다. 이때 큰아들은 술에 절을 하고 마셨는데, 작은아들은 절을 하지 않고 곧바로 마셨다. 두 아들의 행동이 궁금해진 종요는 일어나서 그 연유를 물으니, 종육은 술을 마실 때 예의를 갖춰야하기에 절을 한 것이고, 종회는 도둑질은 본래 예의에 어긋나서 절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다. 종육은 술에, 종회는 도둑질에 초점을 맞췄기에 두 형제의 대답이 달랐던 것이다. 종요는 아들의 행동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누구의 생각에 손을 들어주었을까. 『세설신어』에 나오는 주례(酒禮) 이야기이다.

술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비례할 정도로 늘 함께 해왔던 음식이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농경사회의 풍농(豊農)과 기복(祈福)의 마음을 담는 행사에 애용되었고, 문학의 풍취를 돕는 역할도 충실히 하였다. 식민지 시대의 금주정책은 가양주를 만들며 극복하였고, 현대는 주류가 다양해지면서 애주가들의 입은 시대에 상관없이 항상 호강하고 있다. 이렇듯 오랜 시간동안 우리와 함께한 만큼 그에 대한 주도(酒道)가 확립되었을 법도 한데, 우리의 음주 현실은 아직 취몽(醉夢)에 빠진 듯 흔들리고 있다. 몇몇 어긋난 주당들의 잘못된 주도로 대한민국의 음주문화를 멍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유나 원근, 주종을 불사(不辭)하고 술을 마신다. 마치 이 험난한 세상을 맨정신으로 어찌 살아가겠는가라면서 술을 마시되 취하지 않으면 디오니소스와 박카스에 대한 모독이라는 거창한 변명까지 곁들일 것 같은 모양새로 말이다. 이러한 불사조(?) 정신은 결국 타인을 배려하지 않은 상처로 이어지는 것이다.

술은 그 자체로는 해익(害益)을 논할 수가 없다. 해롭다거나 이롭다고 한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여서 해석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독주(毒酒)도 되고, 약주(藥酒)도 될 수 있다. 이것이 술을 마시기 전보다 마신 후가 중요한 이유이다. 취함에도 정도(正道)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술에 취해 평상심을 잃는 자는 신용(信用)이 없는 자이며, 우는 자는 인(仁)이 없는 자이고, 소란을 피우는 자는 예의(禮儀)가 없는 자이다. 조지훈은 주도에도 단이 있다는 `주도유단설(酒道有段說)`을 주장하면서 술로 인해서 인생을 마감한 `폐주(廢酒)`를 최고의 경지에 올려놓았다. 이는 술로 인해 생을 다한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도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음주로 인한 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다. 독주의 성배를 든 주당들은 때를 가리지 않고 연일 문제를 일으킨다. 결국 문제의 심각성으로 인해 국회에서는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대한 법률을 대폭 강화하였다. 음주운전은 폭력이며 살인행위이기 때문에 주취로 인한 사고는 감경사유도 없애자는 폐지여론과 국민청원도 등장하였다. 이번 기회에 건전한 음주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곳곳에서 자정(自淨)의 목소리도 들리고는 있지만, 사회 전반에 반가운 메아리로 퍼져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술은 누구나 마실 수는 있지만, 아무렇게나 마셔서는 안된다. 종육처럼 나름대로 술에 대한 예의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먼저 그 마음을 가다듬고, 술을 이기려는 오만한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마시되 속인의 마심(魔心)이 발동하여 취마(醉魔)가 활개를 치면 안된다는 것이다. 『논어』에서는 `술에 일정한 양을 정해두진 않지만, 마시되 난잡하지 않아야 한다(唯酒無量, 不及亂)`고 하였고, 『채근담』에서는 `꽃은 반쯤 피었을 때가 아름답고, 술은 적당히 취해야 좋다(花看半開, 酒飮微醉)`고 하였다. 물고기가 물과 싸우지 않듯, 주객은 술의 속성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남을 배려하는 음주문화가 정착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마 종요는 종육의 생각이 더 기특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김하윤 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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