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단식농성은 뚜렷한 목적과 명분을 가지고 정치적 전환기나 위기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수단인 경우가 많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3년 언론통제 중지와 대통령 직선제를 목적으로 23일간 진행하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0년 내각제 개헌 포기와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를 목적으로 13일간 진행하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014년 세월호 특별법제정 촉구를 목적으로 10일간 단식농성을 한 바 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요구하며 열흘째 단식을 이어가다 단식농성을 중단했다. 여야 5당 정치인들이 15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키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특히 비례대표 확대와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 10% 이내 확대 검토, 지역구 의원선출 방식 등에 대해서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합의에 따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며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면 중국 전국시대의 소진(蘇秦)과 그의 친구 장의(張儀)이다.

열국이 난립했던 중국의 전국시대에 진나라의 세력이 커지자 소진은 연, 제, 초, 한, 위, 조 6국을 남북동맹으로 형성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합종책략을 성공시키게 된다. 이에 대해 중국의 역사서 사기 `소진열전`에서는 "소진이 합종책으로 육국이 연합하자 진나라는 무려 15년 동안 함곡관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진나라는 연횡설을 주장한 소진의 친구 장의를 통해 6국이 가장 강력한 진나라에 의지하여 연맹을 체결해야 주변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지 않고 안전할 것이라는 연횡책략으로 합종책을 무력화하게 된다. 이를 통해 진나라는 중원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목인 함곡관을 나와 중국역사상 첫 번째 통일 왕조가 되는 발판을 만들게 된다.

그 후 세 개 이상의 국가가 모여 자국의 이익을 위한 국제회의의 결과를 유리하게 끄는 방법으로 `합종연횡의 법칙`이 생기게 된다. 합종이란 세로로 통합한다는 뜻이다. 합종이 종적인 남북동맹이라면 연횡은 횡적인 동서동맹이다. 12월 15일 "5당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합의"는 혹시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회의원 정원수만 증원하기 위한 합종연횡술책은 아닌지. 소수당인 바른미래당, 평화민주당, 정의당은 합종을 통해 향후 다수당에 통합되지 않고 존립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원내정당을 넘어 다수당으로 도약하겠다는 합종책략을 추구하려는 것은 아닌지. 또한 다수당인 민주당과 한국당은 향후 국민의 지지를 회복시키고 소수당을 흡수통합하기 위한 연횡책략으로 합의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조선 정조와 철종시기에 살았던 문인 임연당(臨淵堂) 이양연(李亮淵)은 그의 시집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에 서산대사의 오도송이자 김구 선생의 좌우명이 된 `답설`이란 시를 남겼다.

"천설야중거(穿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어지러이 걸어가지 마라/ 금조아행적(今朝我行跡)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이/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후일에 다른 사람에게 이정표가 되리니"

국민을 위한 정치가라면 이 시가 주는 함의를 곱씹어 명심해야 한다. 눈길을 헤치고 들판을 걸어가면서 자신의 행로가 지니는 의미를 되 돌아봐야 한다. 누가 보지 않아도 똑바로 걸어가야 한다. 혹시라도 후대의 누군가 뒤에 온다면 이정표가 되고 후대의 행로를 비틀거리게 만들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의 길이 바로 이런 길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제도는 민주주의 근간 중에서도 근간을 이룬다. 단식으로 어렵게 마련된 선거개혁의 기회인만큼, 아무도 걷지 않은 하얀 설원에 선 입장으로 5당 정치지도자는 내 이익과 내 당의 당리당략은 버려야 한다. 오직 국민권익보호와 국가의 미래 발전을 최우선으로 바라보고 선거개혁을 진행해야 한다. 이번에는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전일욱(단국대 공공관리학과 교수) 백범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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