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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백석노인 작품을 보는 즐거움

2018-12-18 기사
편집 2018-12-18 07: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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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
제백석(齊白石) 전시(치바이스와 대화 2018.12.05.-2019.02.17)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다. 한중교류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중국국가미술관 소장의 제백석 작품 81점이 공개되고 제백석이 정신적 스승으로 삼은 명말청초의 거장 팔대산인(八大山人)의 서화와 근대중국 전각, 문인화의 거장 오창석(吳昌碩)의 작품이 이번 전시에 나란히 걸려있다. 전시부제 '같고도 다른(似與不似)'은 제백석이 계승한 중국회화의 역사전통, 그리고 새로운 창조가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제백석은 명발청초 명 황실의 후손으로 망국의 유민(遺民)이 되어 성속(聖俗)을 넘나들었던 팔대산인 주탑(朱?)의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제백석은 남창(南昌)을 여행할 때 본 주탑의 진본을 30여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어 그려본다고 했다. 남을 닮고 싶지 않지만 팔대산인 많큼은 참으로 어렵다고 했던 제백석이 주탑의 작품을 통해서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벙어리로, 선승으로, 광인으로 한평생을 살았던 주탑은 처절한 현실이 오히려 자존(自存)이 되었고, 저항과 반골의 붓질을 넘어 담박하고 천진한 달관을 그림으로 남겼다. 현대미술에 전혀 어색하지 않은 파격적인 구도와 간결한 선, 그리고 도도한 정신이 분명 제백석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고 제백석 또한 이를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시서화, 전각이라는 전통예술의 계승과 전개에 직접적인 영향과 실존을 공유했던 인물은 상해파의 대표인물인 오창석이다. 동과 서, 전통과 현대, 문명사가 전환되는 근현대 시기에 화조화와 문인화를 집대성하여 회화예술을 고봉에 올려 놓은 이가 오창석이다. 오창석은 전각에 기초한 필획으로 기세가 드높고 힘이 있으며 간결하고 고아한 화법으로 강렬한 대비와 압도적인 화면을 개척했다. 중후하고 윤택하며 웅혼한 기풍의 오창석 작품은 제백석에게 주요한 참고가 됐고 실제 오창석과 동일한 제재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오창석이 칠십오세(1918)에 그린 '삼색모란(三色牡丹)'은 필세가 기운차고 진홍색의 묵색의 대비가 강렬하다. 제백석이 구십이세(1952)에 그린 '모란'은 크고 강렬한 자주빛 모란과 간략한 잎으로 개성화한 작품을 그렸다. 이에 더해서 구십칠세(1957)에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모란'은 대상에 대한 정확한 묘사는 이미 없고 묵색이 혼연일체를 이룬 추상화 된 모란 작품을 그렸다. 짙고 화려하며, 단순 강렬한 이 모란을 통해 결국 제백석은 오창석을 배우고 또한 뛰어 넘었다. 제백석은 "내가 남에게 배운 것은 남을 모방한 것이 아니며, 배운 것은 필묵의 정신일 뿐 외형이 닮고 안 닮은 것과는 무관하다"라고 말한다. 제백석이 자신의 예술을 계승에서 창조로 그리고 개인적 품격의 독립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배움의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예술정신을 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전시에 제백석의 다양한 '화훼책'과 서민적 인물도상, 물고기, 게, 새우, 초충 등이 먹색과 담백한 채색으로 펼쳐져 있다. 가히 '살아있는 빛에 향기가 나네(活色生香)'라고 할 만하다. 배추나 오이를 그려도 격조있는 문인화가 되는 이 그림들을 보고 오늘날은 왜 이것이 되지 못하는지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무릇 그림을 그리려거든 '같고도 다른' 그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류철하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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