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들 한마디 한마디에 일희일비

세종시와 이춘희 시장은 요즘 시소를 타는 기분이다. 세종시를 바라보는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다. 요 며칠 사이에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가늠하기 힘들다.

문재인 대통령이 엊그제 정부세종청사에서 첫 국무회의를 주재한 일은 상당히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세종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세종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참여정부 시절 구상했던 세종시가 오늘날 대한민국 행정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데 대한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세종시를 균형발전의 심장으로 표현한 대목은 가슴에 와 닿는다.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이 한마디 말로 문 대통령의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정수도란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의지를 보여줬다.

반면에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세종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문 대통령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총리는 지난 5일 송년 기자회견에서 KTX세종역을 신설할 계획이 없음을 밝히면서 `세종시 역할론`까지 들고 나왔다.

이 총리는 "세종시가 균형발전 산물로 태어났지만 이제 균형발전을 위해 뭔가를 내놓아야 할 처지다. 시청 내 지역상생팀이라든지, 어떤 전담조직을 둬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는 균형발전을 연구할 때"라고 말했다. 이 총리의 말을 되짚어 보면 세종시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태어난 도시인데 주변 도시에 오히려 피해를 주고 있으니, 다른 주변 도시와 균형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으라는 이야기다. 그는 지난달 세종시지원위원회를 주재한 자리에서도 충청권과 전국의 균형발전을 위한 세종시의 역할을 주문했다.

얼핏 보면 이 총리의 말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지난해 세종시로 전입한 인구 중 62%가 대전, 충남·북 등 주변 충청권에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세종시 주변에서는 `세종시 블랙홀`이라는 과장된 말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던진 일련의 메시지들도 KTX세종역에 반대하는 충북의 여론, 세종으로 인구 유출을 걱정하는 대전의 분위기를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신도시가 건설되면 주변 도시의 인구가 유입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않는가. KTX세종역도 새로운 노선을 깔자는 것도 아니고 기존의 노선에 간이역을 만들자는 것인데 `세종시의 역할` 운운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세종시의 신도심인 행복도시는 행복도시건설특별법에 따라 국가 주도로 건설되고 있다. 이미 1단계 도시건설을 마쳤고, 2020년까지 자족기능과 도시 인프라 기능 확충을 위한 2단계 사업이 한창이다. 오는 2030년까지 인구 50만 명의 자족도시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행복도시는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아섰고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일부 부작용이 없지는 않지만 미완의 도시인 세종시가 지금 단계에서 역할론을 요구받는 것은 시기 상조다.

설사 다소간의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 책임을 세종시에 떠넘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정부가 져야 하고 세종시와 주변 지역과의 상생발전방안도 정부가 내놔야 한다.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진두지휘해야 할 사람은 세종시장이 아니라 국무총리이다. 이 총리는 임명되자 마자 4일은 세종에서 3일은 서울에서 근무한다는 4대 3 원칙을 들고 나와 지역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어느새 세종에서 이 총리의 모습은 많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총리는 다음 대권주자의 반열에 올라와 있는 사람이다. 정치역학 상 그의 말에 더욱 힘이 실리고 해석이 따를 수밖에 상황이다. 이런 연유로 그가 던진 일련의 발언들도 고도의 정치적 계산법에 의한 것이 아닌지 의심받을 수 있다. 이 총리가 혹시 세종시를 미래의 행정수도가 아닌 단순히 인구 30만의 도시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은현탁 세종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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