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이 잦은 연말. 송년회 등 자리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것이 있다. `건배`와 `건배사`다. 건배의 사전상 정의는 건강이나 행복 따위를 빌면서 함께 술잔을 들어 마심, 또는 함께 건강이나 행복 따위를 빌며 술잔을 들어 마시다 이다. 건배(乾杯)의 한자어도 `잔을 깨끗이 비우다`는 뜻. 건배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다. 서양에서 서로 잔을 부딪히며 술에 독약을 타지 않았음을 확인하면서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영국 귀족들이 재미 삼아 술잔을 부딪힌 것이 건배의 시초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건배를 표현하는 단어도 언어권마다 다르다. 중국 간베이, 일본 간파이, 영어권 치어스나 치어업, 독일 프로지트, 이태리 살루테, 프랑스 아 보트르 상태, 스페인 살루드가 대표적이다.

건배의 화룡정점은 건배사. 그래서 건배사를 `30초의 승부, 30초의 예술`이라고도 부른다. 좋은 건배사는 좌중에 큰 감동을 선사한다. 건배사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권위주의 문화가 강했던 70·80년대는 `위하여`가 유행했다. 2000년대 이후 함축적 의미를 담은 줄임말이 널리 사용됐다. 개나리(계급장 떼고 나이는 잊고 리랙스 하자), 사우나(사랑과 우정을 나누자), 변사또(변함 없는 사랑으로 또다시 만나자),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등이다. 글로벌한 건배사로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기자는 라틴어), 하쿠나 마타타(괜찮아 잘될거야 라는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도 있다.

전문가들은 좋은 건배사 조건으로 짧고 간결함을 강조한다. 목소리는 우물쭈물말고 당당하게, 선창과 후창이 가능한 압축된 구호도 무난한 건배사를 만든다. 유머가 있는 건배사도 사랑 받는다. 외국은 추도사에도 유머를 잊지 않는다. 얼마전 조지 W. 부시가 미국 제41대 대통령이자 그의 아버지인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 추도사에서 "모든 것에서 완벽했던 아버지가 골프 쇼트게임과 춤 실력은 형편 없었다. 브로콜리를 못 먹는 식성은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유전됐다"고 말해 추모객을 웃게 만들었다.

나만의 건배사도 큰 자산이다. 건배사의 계절,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배사는, 건배사를 강권 않는 문화일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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