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의 배신

박남기 지음/쌤앤파커스/ 436쪽/2만원

"능력이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지난 2016년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SNS에 올린 이 글은 청년들의 공분을 샀다. 이 발언은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배금주의를 넘어서는 것이었기 때문.

본래 실력(능력)은 부모의 재산이나 능력이 아닌 개인의 실력과 노력으로 이뤄내야만 공정한 사회이며, 현실적으로도 실현 가능하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완벽한 실력주의를 구현하려 하면 할수록 결과는 예상과 다르게 나타났다. 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졌고, 공정성과 정의에 대한 개념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왜 그럴까?

광주교대 총장을 지낸 저자는 `실력의 배신`이라는 이 책에서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갖은 노력을 기울여도 문제가 악화된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원래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거나, 잘못된 진단에 따른 잘못된 처방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후자쪽이다. 우리 사회가 더욱 완벽한 실력주의를 만들고자 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악화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것인 세습이다.

몇몇 명문대 졸업생이 법조계를 장악하는 현상을 방지할 목적으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했지만 결과적으로 법조인 세습 경향이 강화된 것이 그 예다. 고소득 기업인 집안 출신은 로스쿨, 법조인 집안 출신은 사법연수원으로 이전보다 더 많이 몰리고 있다. 또 학부에 비해 학생 선발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데다 부모의 부를 더 필요로 하는 전문대학원(치의학전문대학원, 약학전문대학원)에서 전문 인력을 양성함으로써 부모의 직간접적 영향력이 강화된 것도 들 수 있다.

학벌 타파를 명분으로 내건 국가고시 제도 개혁안도 마찬가지다. 외교부를 포함한 정부 부처들에서 인턴제를 비롯한 다양한 특별 채용제 도입을 통해 고위직 세습 경항을 강화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대기업들은 신입사원 채용 방식을 심층면접을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바꿔 수도권 대학 위주의 신 학벌주의를 탄생시켰다.

학벌을 타파하면 실력주의가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력주의가 학벌사회를 만든 원인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실력주의의 그림자를 옅게 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 대안으로 신실력주의 사회를 제안한다. 실력과 직업 배분 사이의 연결 고리는 유지하되, 직업과 보상 사이의 연결 고리는 느슨하게 하자는 것이다. 즉 누진소득세, 최고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임금체계 개혁 등을 통해 근로 의욕은 유지시키면서도 직업간 사회적 재화 분배 차이를 줄이는 제도적·사회문화적 보완 장치가 마련된 `근로의욕 고취형 복지사회`가 저자가 제안한 신실력주의 사회다.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사회가 그토록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이라 믿었던 실력주의에 대한 환상을 직시하고 한국 사회의 거대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초석을 놓는다. 이와함께 실력주의라는 어두운 그림자에 갇혀 있는 대다수의 청년들도 자신의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님을, 그것이 단지 노력이 부족해서,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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