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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 경기미의 불편한 진실

2018-12-12기사 편집 2018-12-12 07: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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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지역 쌀 브랜드를 꼽으라면 대부분 경기미를 들고 있다. 경기미란 포괄적으로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쌀을 의미하는데 주로 이천, 여주, 안성, 평택, 김포 등에서 생산되는 쌀이 미질이 좋고 밥맛이 우수하다고 해서 경기미로 불리고 있다. 경기미가 왜 유명세를 타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물론 품질이 우수한 점도 있었겠지만 과거에는 농산물 조달시스템이 발달하지 못해 도성 가까이에서 재배되는 지리적인 이점 때문에 경기미가 궁궐에 진상 됐고, 임금이 먹는 쌀이라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유래야 어쨌든 지금도 경기미라고 하면 타 지역 쌀보다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다. 이러한 가격 프리미엄을 유지하기 위해 경기도, 특히 경기미 재배농가들은 수확량은 떨어져도 미질이 뛰어난 품종들을 재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것은 최근 경기미로 통용되는 쌀들의 품종을 살펴보면 아키바레(추청), 고시히카리(월광), 히토메보레(한눈에 반함) 등 모두 일본에서 개발돼 공식·비공식적으로 국내에 들여온 품종이란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과거 우리가 경기미라고 알고 있던 쌀 품종은 우리나라 품종이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경기미의 주력품종이 일본품종으로 대체된 것이다. 고시히카리는 1956년, 아키바레는 1962년 일본에서 개발된 품종이다. 거의 50-60년 전에 개발된 종자들을 한국에서 최고품종으로 인정하고 재배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한국은 일본과 모든 분야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주식인 쌀 중에서 최고로 치는 경기미는 대부분 일본품종이다. 이러한 사실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도 관계되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최근 일본품종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는 순수 우리품종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한 소규모 민간 종자회사가 오랜 노력 끝에 개발해 현재 대형유통업체와 인터넷에서 판매가 급격히 증가되고 있는 골든퀸과 진상 등이 그것이다. 이중 향미의 일종인 골든퀸은 최근 화성시·서산시·곡성군·신안군 등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다고 한다. 골든퀸은 구수한 향과 부드러운 밥맛으로 소비자의 인기가 높아 우리나라에서 최고가격에 판매되는 품종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금까지 화성시에서 생산되는 쌀은 같은 경기미 생산지역이면서도 타 지역산보다 인지도가 낮았다. 그러나 화성시가 골든퀸을 지역 특화품종으로 재배하면서 지금은 이천, 여주 쌀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여주시는 진상품종을 독점 재배할 수 있는 전용실시권을 확보해 일본품종인 고시히카리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첫해인 올해부터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해외에서도 바스마티(인도, 파키스탄), 자스민(태국), 산도향(중국) 등 향미는 일반 쌀에 비해 2-3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향미가 개발된 적은 있지만 거의 보급되지 못하다가 골든퀸이 보급되면서 본격적으로 향미시대를 열게 됐다.

현재 경기미의 주력품종인 고시히카리 등 일본품종들은 대부분 키가 큰 품종들이다. 그래서 태풍 등 강한 바람이 불거나 비료를 과용하게 되면 벼가 쓰러져서 수량 감소와 품질 저하를 초래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일본품종 재배에 경험이 풍부한 경기도의 농가들을 제외하고 타 지역 농가들은 일본품종 재배를 기피하고 있다. 이러한 타 지역의 일본품종 기피현상은 경기미의 차별화에 일조를 하는 면도 있다. 또한 고시히카리 등 일본품종은 생육중에 벼가 쓰러져서 발생되는 피해를 막기 위해 식물생장조절제나 도복경감제가 사용되기도 한다고 한다. 반면에 골든퀸이나 진상 품종은 밥맛은 일본품종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키는 작아서 재배가 용이하고 수량도 많다. 현재 쌀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골든퀸과 진상의 우수한 밥맛과 재배적인 장점 등을 감안하면 현재 경기미로 유통되는 고시히카리 등 일본품종을 조만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골든퀸의 사례에서 보여준 것처럼 우리 고유의 품종개발과 보급을 통해 우리민족의 주식인 쌀 중 최고 브랜드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경기미의 정체성을 하루 빨리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응본 공주대 겸임교수·전 농촌진흥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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