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글을 마치며(루카 10,1-12):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예수님의 강생은 2000년 전에만 있었던 사건이 아니다. 이 세상 창조 때부터 강생해 오신 하느님께서는 마지막 때까지 강생하실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활동에 대한 동참이 바로 내 삶 안에서의 강생이다. 생명과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의탁 안에서 나 자신을 파괴하고, 헛되게 하고, 의미가 없어지게(강생) 해야 한다. 내가 아니라 그분께서 사셔야(갈라 2,20) 내 나라가 아닌 하느님 나라가 내 안과 이 세상에 건설이 된다. 하느님 나라는 그 무엇도 아닌 오직 강생을 통해서 건설된다. 강생이 없는 모든 활동들은 술 찌꺼기(糟魄, 조백)일 뿐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의탁 안에서 모든 구분이 사라지고 죽음과 부활을 하나로 보게 될 때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낮고, 약하고, 누추한 것들을 선택하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살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최종 목적지인 십자가까지 따라 온 한 제자에게 당신을 보호하고 키워낸 어머니의 품을 내어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비록 우리는 부족해도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따르려는 이들을 보호하시고 성숙하게 하실 것이다. 하느님 당신이시고, 그분의 뜻인 십자가를 선택하는 이들이 예수님의 참된 가족들이다.(마태 12,50)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루카 10,3) 예수님께 파견을 받은 사람은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지는 양과 같다. 부족함 때문에 `양`이기도 하지만 삶의 방식 때문에 `양`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 10,4)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는 말씀은 자신을 보호해 주거나 의탁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 파견을 받은 우리는 오직 하느님만을 믿고 의탁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만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해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다. 하느님만을 믿고 의탁할 때 하느님 나라는 건설되고 모든 측면에서 충만한 상태인 `평화`가 찾아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루카 10,5-6) 유다인들의 인사는 `평화`를 빌어주는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인사를 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께서는 어느 집에 들어가든 `평화`를 빌어주라고 하신다. 제자들이 전하는 평화는 당시 사람들이 형식적으로 전하던 평화가 아닌 많은 예언자들이 예언한 마지막 구원의 때의 평화이다.(이사 11,1-9 등)

이 평화는 모든 이에게 전해지지만 모두가 그 평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화를 받을 사람, 즉 하느님만을 믿고 의탁하는 삶의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위에 평화가 머무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평화를 전하는 이에게 평화가 되돌아올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의 상은 바로 활동 그 자체이다. 우리 활동의 결과가 상이 될 수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하는 활동이 성공적이던 그렇지 않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성공만을 위해, 더 좋은 결과만을 위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녀서는 안 된다. 하느님을 위해 한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고 충분하다. 우리는 비록 그것이 실패이고 어려움일지라도 그곳에 머물며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해야 한다. 생명과 역사의 주인이신 분께서 모든 것을 완성하실 것이라는 믿음과 의탁 안에서 1년 6개월간의 부족한 글을 마치며 기도한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히브 10,5)

오창호 천주교 대전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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