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법정시한을 또 지키지 못한 끝에 469조 6000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을 가까스로 처리했다. 국회는 사실상의 회기 마지막 날인 지난 8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을 엿새나 넘겨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최장 지각 처리하는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더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 3당을 배제한 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만이 참여한 가운데 짬짜미 반쪽 통과시켜 모양이 좋지 않다. 국민의 실생활과 뗄려야 뗄 수 없는 나라 살림살이를 충분히 들여다보기는커녕 약 9000억 원을 감액 조정하는 데 그쳤으니 실망스럽다.

부실 심사도 그렇지만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밀실합의는 국회의 고질을 보는 듯 했다. 법정시한을 12일 앞두고서야 예결위를 본격 가동했으니 제대로 된 심사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3당 예결위 간사들만 참여하는 `소(小)소위`를 운영한 건 예고된 수순이었다. 법적 근거도 없고 회의 내용도 공개하지 않는 `뒷방`에서 `쪽지 예산`이 판친 건 목격한 대로다. 여야의 실세 의원들은 물밑에서 이루어진 증액심사에서 카톡을 주고받으며 지역구 예산을 늘렸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물론 예산국회를 보이콧한 정당의 의원들까지 가세했다니 어이가 없다.

예산안 처리에 함몰돼 있는 사이 개혁입법 처리가 물 건너 간 대목은 되짚어볼 일이다. `유치원 3법`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 민생과 밀접한 법안들이 줄줄이 계류 중이다. 공공부문 채용비리에 관한 국정조사 계획서 채택 등도 현안이다. 특히 선거제 개혁을 둘러싼 대립은 연말 정국의 뇌관이다. 해를 넘기기 전 임시국회 개회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정치 복원의 길을 찾아야 한다. 거대정당인 민주당과 한국당이 앞장 서는 게 맞다. 예산안 반쪽 처리 오점을 민생법안 처리와 선거제 개혁 협상으로 말끔히 씻어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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